82 우리가 전에 말했듯이, 투사가 없다면 분노도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투사가 없다면 사랑도 있을 수 없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투사는 마음의 근본 법칙이며, 따라서 항상 작동하는 법칙이다. 너는 바로 이 법칙에 의거해 창조하며, 또한 창조되었다. 바로 이 법칙이야말로 왕국을 통일하여 하느님의 마음 안에 간직해 주는 것이다. 에고에게 이 법칙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없애버리는 수단으로 지각된다. 성령에게 이 법칙은 공유의 근본 법칙으로서, 너는 이 법칙에 의거해 네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다른 이에게 줌으로써 너 자신의 마음 안에 간직한다.
83 성령에게 투사는 확장의 법칙이다. 에고에게 투사는 박탈의 법칙이다. 따라서 투사는 네가 어떻게 적용할지 선택하기에 따라, 풍요나 결핍을 낳는다. 이런 선택은 정녕 너에게 달려있지만, 투사를 사용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너에게 달려있지 않다. 모든 마음은 반드시 투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마음이 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마음은 정녕 생명이다. 에고는 어김없이 투사와 분노를 관련짓는데, 이것을 마침내 무효화하려면 먼저 투사에 대한 에고의 용도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84 에고는 항상 갈등을 보존하려고 한다. 에고는 갈등을 줄여주는 듯이 보이게 만드는 방법을 꾸며내는 데 아주 독창적이다. 에고는 네가 갈등을 너무 참을 수 없어서 포기하겠다고 주장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고는 자신이 너를 갈등에서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고 설득하려 하는데, 이는 네가 에고를 포기하고 너 자신을 자유롭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하느님의 법칙을 뒤틀어 자신만의 버전으로 사용하는 에고는, 마음의 진정한 목적을 무산시키기 위해서만 마음의 권능을 사용한다. 에고는 너의 마음으로부터 다른 마음들로 갈등을 투사하면서, 네가 갈등을 없애버렸다고 설득하려고 시도한다. 여기에는 겉보기에 별로 분명하지 않은 몇 가지 오류가 있다.
85 엄격히 말해, 갈등은 완전히 공유될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투사될 수 없다. 갈등의 일부는 간직하고 다른 부분은 제거하려는 어떤 시도도 실제로 아무런 의미도 없다. 갈등하는 교사는 서툰 교사인 동시에 서툰 학습자임을 기억하라. 그의 레슨은 혼란스럽고, 그 레슨의 전이 가치도 그의 혼란으로 인해 심각하게 제한된다. 두 번째 오류는,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주어버림으로써 그것을 없애버릴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그것을 주는 것은 곧 그것을 간직하는 방법이다. 그것을 바깥에 주어버림으로써 안에서 제거했다는 믿음은 확장의 권능을 완전히 왜곡하는 것이다.
86 그러므로 에고로부터 투사하는 자는 자신의 안전을 지키려고 바짝 경계한다. 그는 자신의 투사물들이 돌아와 자신을 해칠까 봐 두려워한다. 그는 자신의 투사들물을 자신의 마음에서 지워버렸다고 믿지만, 또한 그것들이 다시 자신 안으로 기어들어 올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도 믿는다. 그 투사물들은 그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서,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려고 강박적인 행동에 쫓기듯이 몰두하게 된다. 너 자신에 대한 환상을 영속시키지 않으면서 다른 이에 대한 환상을 영속시킬 수는 없다.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다. 마음을 조각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87 조각내는 것은 조각들로 부수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공격할 수도 공격받을 수도 없다. 마음이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은 에고가 항상 범하는 오류로서, 에고가 사용하는 모든 투사의 근저에 놓여있다. 에고는 마음이 정녕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며, 따라서 네가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에고의 생존은 너의 마음에 달려있다. 에고는 정녕 너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고는 일종의 정체성 혼란으로서, 결코 일관된 모델을 가진 적도 없고 결코 일관되게 발달하지도 않았다. 에고란, 자신의 권능을 그릇되게 사용하는 왜곡된 마음들이 하느님의 법칙을 그릇되게 적용하여 나온, 왜곡된 생산물이다.
88 에고를 두려워하지 말라. 에고는 정녕 너의 마음에 달려있고, 너는 에고의 존재를 믿음으로써 에고를 만들었듯이 에고에게서 믿음을 거둬들임으로써 에고를 물리칠 수 있다. 에고의 존재를 믿는 책임을 다른 누구에게도 투사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그 믿음을 보존할 것이다. 너 스스로 에고의 존재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할 때, 너는 이미 모든 분노와 공격을 내려놓은 것이다. 분노와 공격은 너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투사하려는 시도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을 일단 네 것으로 받아들였으면, 계속 간직하지는 말라. 잘못을 재빨리 성령께 맡겨 완전히 무효화되게 하라. 그럼으로써 잘못의 모든 결과가 너의 마음과 온아들로부터 전체적으로 사라지게 된다.
89 성령은 너에게 믿음 너머를 지각하라고 가르칠 것이다. 진리는 정녕 믿음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의 지각은 정녕 참이다. 에고는 언제라도 완전히 잊힐 수 있다. 에고는 항상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믿음을 계속 간직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네가 에고에 대해 더 많이 배울수록, 에고를 믿을 수 없음을 점점 더 많이 깨닫게 된다. 신뢰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것은 정녕 믿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것에서 비롯되는 모든 지각이 철저히 무의미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너는 그것이 믿음 너머에 있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그것은 믿음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90 이 수업의 전체 목적은 다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에고는 믿을 수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음으로써 에고를 만들어낸 너는 홀로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너 스스로 속죄를 받아들이는 것은 네가 홀로 있을 수 있다는 믿음에 반하여 결정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분리의 아이디어를 물리치고 왕국 전체를 그야말로 너의 일부로서 진정으로 동일시하고 있음을 확언하는 것이다. 이런 동일시는 믿음 너머에 있듯이, 의심 너머에 있다. 너의 온전성에는 한계가 없다. 존재는 무한 안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