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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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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7장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17분

제7장 왕국의 일관성

Ⅹ. 왕국의 확장

91 오로지 너 자신만이 너의 창조적 권능을 제한할 수 있지만, 하느님은 그 권능을 해방하기를 뜻하신다. 그분은 당신 자신에게서 당신의 창조물들을 박탈하기를 뜻하지 않으시듯, 네가 너 자신에게서 너의 창조물들을 박탈하기를 뜻하지도 않으신다. 온아들에게 너의 선물을 주기를 거절한다면, 하느님께 너 자신을 드리기를 거절하는 것이다. 자기중심성은 에고에서 나오지만, 자아 충만함은 영혼에서 나온다. 바로 그것이 하느님이 영혼을 창조하신 방법이기 때문이다. 성령은 에고와 영혼 사이에 있는 마음 부분으로서, 둘 사이에서 항상 영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중재한다. 에고에게, 이것은 편파적이다. 따라서 에고는 자신이 마치 불리한 취급을 당하는 부분인 듯이 반응한다. 영혼에게, 이것은 진리다. 영혼은 자신의 충만함을 알며, 그로부터 자신이 제외되는 어떤 부분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92 영혼은 자신이 하느님 안에 포함되어 있듯이 모든 형제들의 의식이 자신의 의식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안다. 따라서 온아들 전체와 그 창조주의 권능 전부가 영혼 자신의 충만함이며, 그것은 영혼의 창조물들을 똑같이 온전하고 똑같이 완벽하게 만든다. 에고는 하느님을 포함하는 전체를 이길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전체든 반드시 하느님을 포함한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그분의 모든 권능을 부여받았다. 그것들은 그분의 일부로서, 그분의 존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축복하기가 희생의 반대듯이, 창조하기는 상실의 반대다. 존재는 반드시 확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존재가 자신에 대한 앎을 간직하는 방법이다.

93 영혼의 창조주가 그러셨듯이, 영혼도 자신의 존재를 간절히 공유하고 싶어 한다. 공유하기에 의해 창조된 영혼의 뜻은 창조하는 것이다. 영혼은 하느님을 가둬두기를 소망하지 않으며, 그분의 존재를 확장하기를 소망한다. 하느님의 존재를 확장하는 것이 영혼의 유일한 기능이다. 영혼을 창조하신 분의 충만함을 가둬둘 수 없듯이, 영혼의 충만함도 가둬둘 수 없다. 충만함이란 정녕 확장이다. 에고의 사고체계 전체가 확장을 가로막으며, 따라서 너의 유일한 기능을 가로막는다. 그러므로 에고의 사고체계는 너의 기쁨을 가로막으며, 이것이 바로 네가 너 자신을 실현되지 않았다고 지각하는 까닭이다. 창조하지 않는 한, 너는 정녕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하느님은 실현되지 않음을 모르시며, 따라서 너는 창조할 수밖에 없다. 너는 너 자신의 창조물들을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 그들의 실재를 해칠 수는 없다. 이것은 마치 네가 너의 영혼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해서 영혼의 존재를 해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94 왕국은 영원히 확장하고 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마음 안에 있기 때문이다. 네가 너의 기쁨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너 자신의 자아 충만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 자신에게서 왕국의 어떤 부분이라도 제외한다면, 너는 온전하지 않게 된다. 분열된 마음은 자신의 충만함을 지각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 마음의 온전성이 그 마음을 비추어 치유하는 기적이 필요하다. 그러면 그 마음은 자신 안의 온전성을 다시 깨달아 받아들이고, 마침내 왕국으로 회복된다. 자신의 자아 충만함에 대한 충만한 인식은 자기중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확장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왕국에 완벽한 평화가 있는 까닭이다. 모든 영혼은 자신의 기능을 실현하고 있으며, 오로지 완전한 실현만이 평화다.

95 정신 이상도 실재를 증가시키는 듯이 보이지만, 그렇게 증가시키는 것이 참이라고 주장할 자는 아무도 없다. 따라서 정신 이상은 진리의 비확장이며, 그것은 기쁨을 가로막는다. 그것은 창조를 가로막음으로써 자아실현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자아가 실현되지 않은 자들은 우울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자아 충만함이 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너의 창조물들은 너를 위해 보호되고 있다. 너의 마음 안에 있는 성령은 너의 창조물들에 대해 알며, 네가 허락할 때마다 그들을 너의 의식 속으로 데려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너의 창조물들은 너의 존재의 일부로서 그곳에 있다. 너의 실현은 그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모든 아들이 창조한 것들은 네 것이다. 모든 창조물은 전체로서 온아들을 위해 창조되어 모든 이에게 속하기 때문이다.

96 너는 하느님의 아들들이 받은 유산을 늘리는 데 실패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것을 너 자신을 위해 안전하게 지키는 데도 실패하지 않았다. 그 유산을 너에게 주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으므로, 그분은 그것을 영원히 주셨다. 네가 그 유산을 영원히 갖는 것이 그분의 뜻이었으므로, 그분은 너에게 그것을 간직할 수단을 주셨다. 그리고 너는 그것을 정녕 잘 간직해 왔다.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오로지 제정신이 아닌 자들에게만 의미가 있다. 실제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너의 자아 충만함은 하느님의 자아 충만함만큼이나 무한하다. 그분의 자아 충만함과 마찬가지로, 너의 자아 충만함도 완벽한 평화 속에 영원히 확장한다. 그것은 너무도 강렬히 빛나는 빛이라서 완벽한 기쁨 속에 창조하며, 그것의 온전성으로부터는 오로지 온전한 자들만이 태어날 수 있다.

97 너는 결코 너의 정체를 잃은 적이 없으며, 그것을 온전하고 평화롭게 유지해 주는 확장물들을 잃은 적도 없다. 이를 확신하라. 기적은 이런 확신의 표현이다. 기적은 네가 네 형제들과 제대로 동일시하고 있으며, 또한 너의 정체는 실로 확장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기적은 전체적인 지각에 대한 레슨이다. 네가 전체의 어떤 부분이든 이 레슨에 포함한다면, 이미 전부를 포함한 것이다. 너는 왕국과 그곳에 속하는 너의 창조물들에 대해 글을 쓸 때, 네가 알지 못하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에고의 전제들이 낳은 전체 결과를 네가 아직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부분적인 사실일 뿐이다. 이 세상과 마찬가지로, 왕국도 전제들이 낳은 결과다.

98 너는 에고의 추론을 그 논리적 결론으로 이끌어냈지만, 그것은 모든 것에 대한 전체적인 혼동일 뿐이다. 하지만 너는 이것이 전체적인 혼동이라고 정말로 믿지는 않는다. 만약 믿었다면, 그런 혼동을 유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네가 이런 결과를 정말로 본다면, 그것을 원할 수 없을 것이다. 네가 그런 결과의 어떤 부분이라도 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결과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는 에고의 전제들은 살펴보려 하지만 그 논리적 결과는 보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네가 하느님의 전제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99 너의 창조물들은 정녕 하느님의 전제들이 낳은 논리적 결과다. 하느님의 생각하기가 너를 위해 그들을 확립했다. 따라서 그들은 본래 속한 곳에 정확하게 있다. 그들은 하느님의 정체에 대한 너의 동일시의 일부로서 본래 네 마음에 속한다. 하지만 네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그리고 네 마음 안에 무엇이 있다고 인식할지는 네가 주어진 순간에 네 마음에 대해 무엇을 믿는지에 달려있다. 그것이 어떤 믿음이든, 그것은 네 마음 안으로 무엇을 받아들일지를 결정할 전제다. 네가 네 마음 안으로 그곳에 실제로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곳에 있는 것을 부정할 수도 있다는 점은 아주 분명하다. 둘 중 어떤 가능성도 여기서 더 이상 공들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둘 다 네가 아무리 옹호하려 해도 옹호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100 하지만 하느님이 친히 당신의 마음을 통해 너의 마음에게 주신 기능을, 너는 부정할 수는 있을지라도 막을 수는 없다. 그 기능은 네 정체의 논리적 결과다. 어떤 논리적 결과를 보는 능력은 그것을 보려는 너의 용의에 달려있지만, 그것의 진리는 너의 용의와 전혀 관련도 없다. 진리는 하느님의 뜻이다. 그분의 뜻을 공유한다면, 너는 그분이 아시는 것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분의 뜻을 너의 뜻이 아니라고 부정한다면, 너는 그분의 왕국은 물론 너의 왕국도 부정하는 것이다. 성령은 너를 오로지 고통을 피하도록 안내할 것이다. 고통을 무효화하면 분명 고통을 피할 것이다. 이런 목표를 인식한다면, 그것에 반대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성령이 말하는 것이 참인지 여부가 아니라, 성령이 말하는 것에 네가 귀 기울이기를 원하는지 여부다.

제7장 왕국의 일관성 - Ⅸ. 갈등의 방어제7장 왕국의 일관성 - Ⅺ. 강함과 약함의 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