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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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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7장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21분

제7장 왕국의 일관성

Ⅴ. 진리를 인식하기

26 하느님의 의미가 왕국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곳이야말로 하느님이 당신의 의미를 두신 곳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간 안에서 기다리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왕국 안에서 안식할 뿐이다. 너처럼 그것도 본래 왕국에 속하기 때문이다. 정녕 하느님의 의미인 네가 어떻게 자신을 왕국에 없다고 지각할 수 있겠는가? 너 자신이 너의 의미와 분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너 자신이 실제가 아니라고 경험하는 것뿐이다. 바로 이것이 에고가 제정신이 아닌 까닭이다. 에고는 네가 너의 정체가 아니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너무도 모순되므로, 명백히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것은 네가 실제로 배울 수 없고, 따라서 실제로 가르칠 수 없는 레슨이다. 하지만 너는 항상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너는 분명 다른 무언가도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비록 에고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27 그렇다면 에고는 항상 무효화되고 있으며, 너의 동기를 의심한다. 너의 마음은 에고에게 전적으로 충성할 수 없다. 마음은 본래 에고에게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고에게 "반역하는" 것은 실로 평화에 충실한 것이다. 그러니 에고의 "적"은 너의 친구다. 우리는 전에 에고의 친구는 너의 일부가 아니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에고는 자신이 전쟁 중에 있어서 동맹자가 필요하다고 지각하기 때문이다. 전쟁 중에 있지 않은 너는 형제들을 찾아야 하고, 네가 보는 모든 이를 형제로 인식해야 한다. 오로지 동등한 자들만이 평화롭기 때문이다.

28 하느님의 동등한 아들들은 모든 것을 가졌으므로, 서로 경쟁할 수 없다. 하지만 형제들 가운데 누구라도 자신과 완벽하게 동등한 자가 아니라고 지각한다면, 경쟁이라는 아이디어가 이미 마음에 들어온 것이다. 이 아이디어에 맞서 경계해 깨어있어야 할 필요성을 경시하지 말아야 한다. 너의 모든 갈등은 그 아이디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충하는 이해관계가 가능하다는 믿음이며, 따라서 너는 이미 불가능한 것을 참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이것이 너 자신을 실제가 아니라고 지각한다는 말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29 왕국 안에 있는 것은 단지 너의 모든 주의를 왕국에 기울이는 것이다. 네가 참이 아닌 것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고 믿는 한, 갈등을 너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로 선택인가? 그렇게 보일 수는 있지만, 보이는 것과 실재는 도저히 같다고 할 수 없다. 왕국 자체인 너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실재가 네 것인 이유는, 네가 실재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왕국 안이 아닌 네 마음 안에서, 소유하기와 존재하기가 궁극적으로 일치되는 방법이다. 네 마음 안에 있는 제단이 유일한 실재다. 그 제단은 완벽한 생각의 반영이므로, 그 생각이 완벽하게 뚜렷하다. 그 제단은 오로지 형제들만 본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빛 안에서만 보기 때문이다.

30 하느님이 친히 너희 마음에 불을 지피셔서 당신의 빛으로 밝게 유지하신다. 그분의 빛이야말로 너희 마음의 정체이기 때문이다. 이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전혀 없다. 그리고 이에 대해 질문했을 때, 너희는 정녕 응답받았다. 그 답은 질문을 그저 무효화하는데, 실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곧 무의미하게 질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립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결코 질문하지 않는 까닭이다. 성령의 유일한 기능은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을 무효화함으로써 확실성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확신하는 자는 지극히 평온하다. 그들은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그의 마음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를 지극한 평안 가운데 머물게 한다. 이것은 곧 자신의 정체를 아는 자가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1 그동안 자주 말했듯이, 치유는 예술일 뿐만 아니라 과학이기도 하다. 치유가 예술인 이유는, 우리가 이미 사용했던 의미에서 영감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영감은 낙심하게 만들기의 반대이며, 따라서 기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낙심한 자들은 문자 그대로 자신에게 "영이 없다고" 믿어서 우울해 하는데, 그것은 단지 환상이다. 네가 그들에게 영감을 줄 때, 그들 안에 영을 넣어 주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마법일 것이며, 따라서 진정한 치유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 너는 그들 안에 이미 있는 영을 인식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그것을 다시 깨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치유사가 부활과 생명의 일부인 까닭이다. 병자의 마음 안에서, 영은 잠들지 않았다. 하지만 영을 지각하고 기뻐할 수 있는 부분은 잠들었다.

32 치유가 과학이기도 한 이유는, 그것이 하느님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의 법칙은 참이다. 그것은 참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의지할 수 있으며, 따라서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과학의 진정한 목적은 예측이나 통제가 아니라, 오로지 이해다. 과학은 자신이 구하는 법칙을 확립하지 않으며, 그것을 예측을 통해 발견할 수도 없고, 전혀 통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과학은 단지 이미 있는 것에 접근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은 영감과 마찬가지로 마법이라고 오해받을 수 있으며, 이미 있는 것과 별도로 수행되어 그것을 확립하는 수단으로 지각될 때마다, 반드시 그런 오해를 받을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에고의 음성일 수밖에 없다.

33 진리는 오로지 인식될 수 있을 뿐이며, 오로지 인식되어야 할 필요만 있다. 영감은 영에서 나오고, 확실성은 하느님의 법칙에 따라 하느님에게서 나온다. 따라서 둘 다 같은 근원에서 비롯된다. 영감은 하느님을 대변하는 음성에서 비롯되고, 확실성은 하느님의 법칙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치유는 하느님에게서 직접적으로 비롯되지 않는다. 그분은 당신의 창조물들이 지극히 온전하다고 아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유는 여전히 하느님에게서 나온다. 치유는 하느님의 음성과 그분의 법칙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치유는 그것들의 결과로서,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의 마음 안에서 일어난다. 이 상태는 그분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잠든 자들은 멍한 상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다. 그리고 그들은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

34 성령은 그가 네 안에 있음을 가르치기 위해 너를 통해 일해야 한다. 이것은 네가 하느님의 일부이므로 그분 안에 있다는 앎을 향한 중간 단계다. 성령이 고취하는 기적에 난이도가 있을 수 없는 이유는, 창조물의 모든 부분이 한 순위 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이자 너의 뜻이기도 하다. 하느님의 법칙이 이것을 확립하고, 성령이 그것에 대해 일깨워 준다. 치유할 때 너는 하느님의 법칙을 기억하고 에고의 법칙을 잊는 것이다. 우리가 전에 말했듯이, 잊기는 단지 더 잘 기억하기 위한 방법이다. 따라서 제대로 지각한다면, 잊기는 기억하기의 반대가 아니다. 모든 부정확한 지각이 그렇듯이, 잊기를 부적절하게 지각하면 다른 어떤 것과 갈등한다는 지각을 유발할 수 있다. 모든 적절한 지각과 마찬가지로, 잊기를 적절하게 지각하면 갈등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

35 그러므로 모든 능력을 성령께 맡겨야 한다. 그는 그것들의 적절한 사용법을 안다. 그는 그것들을 오로지 치유를 위해서만 사용할 수 있다. 그는 너를 오로지 온전하다고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치유함으로써 온전성에 대해 배우며, 온전성에 대해 배움으로써 하느님을 기억하는 법을 배운다. 너는 그분을 잊었지만, 성령은 여전히 너의 잊기는 기억하는 방법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반대를 반대하는 분리된 능력으로 지각되지 말아야 함을 안다. 에고는 모든 능력을 바로 이런 식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에고의 목표는 항상 네가 대립 상태에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36 에고의 목표도 성령의 목표처럼 통합되어 있으며, 바로 이런 까닭에 에고와 성령의 목표는 결코 어떤 방식이나 정도로도 조화될 수 없다. 에고는 언제나 가르고 분리하려 한다. 성령은 언제나 통합하고 치유하려 한다. 너는 다른 이를 치유함에 따라 스스로 치유된다. 성령은 치유에서 어떤 순서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치유는 차이에 대한 믿음을 무효화하는 방법이다. 치유는 온아들을 차이에 대한 믿음 없이 지각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지각은, 하느님의 마음과 일치하지 않는 상태의 마음 안에서조차, 그분의 법칙과 일치한다. 바른 지각의 힘은 너무도 강력해서, 마음을 하느님의 마음과 일치된 상태로 데려간다. 그럴 때 마음은 너희 모두의 내면에 있는 그분의 끌어당기심에 순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37 하느님의 끌어당기심, 혹은 그분의 뜻에 대항하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엄청난 망상이다. 에고는 자신이 그런 능력을 소유하고 있고, 너에게 선물로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너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전혀 아무것도 아니다. 하느님은 너에게, 네가 소유한 것이자 너의 존재이기도 한 선물을 주셨다.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너는 그것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게 된다.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함으로써, 너는 네가 참으로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치유는 앎에 다가가는 방법으로서, 하느님의 법칙과 일치되게 생각하고 그것의 보편성을 인식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이러한 인식이 없기에, 너는 그 법칙을 네게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그 법칙은 무의미하지 않다. 모든 의미가 그 법칙에 의해, 그 법칙 안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38 먼저 천국을 구하라. 그곳이야말로 하느님의 법칙이 진실하게 작동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진실하게만 작동할 수 있다. 그것은 진리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로지 이것만을 구하라. 다른 것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란 정녕 아무것도 없다. 하느님은 아주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모든 것 안의 모든 것이시다. 모든 존재는 정녕 모든 존재이신 하느님 안에 있다. 그러므로 너는 하느님 안에 있다. 너의 존재는 정녕 하느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치유는 네 형제들 안에서 에고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음으로써 에고가 네 안에 일으킨 위기의식을 잊는 방법이다. 이것은 네 안에서는 물론 네 형제들 안에서도 성령을 강화한다. 그것은 두려움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오로지 이런 초대만을 필요로 한다. 사랑은 온아들 전체에게 자유로이 온다. 사랑은 온아들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너는 사랑으로 깨어남으로써 단지 너의 존재가 아닌 것을 잊을 뿐이다. 이것은 너로 하여금 너의 존재를 기억할 수 있게 해준다.

제7장 왕국의 일관성 - Ⅳ. 통합된 커리큘럼제7장 왕국의 일관성 - Ⅵ. 치유와 마음의 불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