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텍스트
    • 오늘의 텍스트
    • 워크북
    • 교사용 지침서
    • 공지사항
    • 기적의 향기 책 구매
    • 기적수업 첫걸음
    • 기적수업 핵심 주제
    • 용서와 치유 나눔
    • 기적수업과 함께하는 여정
    • 자주 묻는 질문과 답
    • 기적수업 용어설명
    • 내 서재
피드백 보내기
  • 카페
  • 유튜브

Contact

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테마 색상
다크 모드

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7장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22분

제7장 왕국의 일관성

Ⅵ. 치유와 마음의 불변성

39 몸은 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틀에 불과하다. 따라서 몸은 잠재력을 개발하기 위한 수단이며, 이것은 그 잠재력이 무엇을 위해 사용되는지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것은 하나의 결정이다. 이 문제에 대한 에고의 결정은 그 결과가 너무도 뻔하므로 여기서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몸을 오로지 소통을 위해서만 사용하겠다는 성령의 결정은 치유와 굉장히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으므로,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치유되지 않은 치유사는 자신의 소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40 오로지 마음만이 소통한다. 소통하려는 충동은 또한 창조하려는 충동이므로, 에고는 그러한 충동을 없애버릴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에고는 너에게 단지, 몸이 소통은 물론 창조도 할 수 있으며, 따라서 마음이 필요 없다고 가르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으로써 에고는 몸이 마음처럼 행할 수 있으며, 따라서 자기 충족적이라고 가르치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행위는 가르치기를 위한 수준도 배우기를 위한 수준도 아님을 배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너는 네가 믿지 않는 것에 따라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교사로서, 그리고 학생으로서 너를 약화할 것이다. 거듭 강조했듯이, 너는 네가 믿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일관성 없는 레슨은 가르치는 것도 서툴고 배우는 것도 서툴 것이다. 네가 만약 병과 치유를 동시에 가르친다면, 너는 서툰 교사이자 서툰 학생이다.

41 치유는 누구나 개발할 수 있고, 치유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발해야 하는 유일한 능력이다. 치유는 성령의 소통 형식이며, 그가 아는 유일한 소통 형식이다. 성령은 다른 형식의 소통을 인식하지 않는다. 그는 몸과 마음에 대한 에고의 혼동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들은 소통할 수 있지만, 해칠 수는 없다. 에고를 섬기는 몸은 다른 몸을 해칠 수 있지만, 네가 이미 몸을 마음과 혼동하고 있지 않는 한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이런 사실 또한 치유나 마법에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마법은 항상 치유가 해롭다는 믿음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마법이 기초하는 완전히 미친 전제다. 따라서 마법은 그에 따라 전개된다.

42 치유는 오로지 강화할 뿐이다. 마법은 항상 약화하려 한다. 치유는 치유사 안에서 다른 모든 이가 그와 공유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지각하지 않는다. 마법은 항상 치유사 안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보는데, 그는 그것을 갖지 않은 다른 이에게 자신이 그것을 선물로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그 선물이 하느님에게서 왔다고 믿을 수도 있지만, 만약 자신이 다른 이에게 없는 것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그가 하느님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렇다면 너는 왜 어떤 치유는 이런 종류의 생각하기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지 물을 만하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43 "마법적인 치유사"가 아무리 잘못 인도되고 있을지라도, 그 또한 도우려고 하고 있다. 그는 갈등하고 불안정하지만, 때로는 온아들에게 무언가를 선사한다. 그리고 온아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치유다. 그렇다면 소위 "치유"가 효과가 있을 때는, 도우려는 충동과 도움을 받으려는 충동이 우연히 일치한 때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인 이유는, 그 당시에 치유사는 자신이 진정으로 도움이 된다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가 도움이 된다는 상대방 마음 안의 믿음이 그를 돕기 때문이다.

44 성령은 우연에 의해 작업하지 않으며, 그로부터 오는 치유는 항상 효과가 있다. 치유사가 항상 성령에 의해 치유하지 않는 한, 그 결과는 이랬다저랬다 할 것이다. 하지만 치유 자체는 일관성이 있다. 오로지 일관성만이 갈등에서 자유롭고, 오로지 갈등에서 자유로운 것만이 온전하기 때문이다. 치유사는 제외 대상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리고 어떤 때는 치유를 할 수 있고 어떤 때는 할 수 없다고 인정함으로써, 분명 일관성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갈등 속에 있으며, 갈등을 가르치고 있다.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것 중에 모두를 위해 항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45 사랑은 어떤 제외 대상도 둘 수 없다. 오로지 두려움이 있을 경우에만 제외 대상이라는 아이디어가 의미 있어 보인다. 제외된 것은 두렵다. 그것은 두려움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두려워하는 치유사"라는 말은 용어상 모순이며, 따라서 오로지 갈등하는 마음만이 의미 있다고 지각할 만한 개념이다. 두려움은 기쁘게 만들지 않는다. 치유는 기쁘게 만든다. 두려움은 항상 제외 대상을 만든다. 치유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두려움은 분리를 야기하므로, 해리를 낳는다. 치유는 통합에서 비롯되므로, 항상 조화를 낳는다.

46 치유는 예측이 가능하다. 치유는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모든 것은 신뢰할 수 있다. 그분에게서 오는 모든 것은 전적으로 실제이기 때문이다. 치유를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하느님의 음성에 의해 고취되며, 또한 그분의 법칙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유가 정녕 일관성이라면, 치유는 일관되지 않게 이해될 수 없다. 이해는 일관성을 의미한다. 하느님은 일관성을 의미하시기 때문이다. 일관성은 하느님의 의미므로, 또한 너의 의미다. 너의 의미는 정녕 그분의 의미와 일치하지 않을 수 없다. 너의 전체 의미와 너의 유일한 의미가 그분의 의미에서 비롯되고, 그분의 의미를 닮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과 일치하지 않으실 수 없으며, 너는 그분과 일치하지 않을 수 없다. 너는 너의 창조주로부터 너의 자아를 분리할 수 없다. 그분은 당신의 존재를 너와 공유함으로써 너를 창조하셨다.

47 치유되지 않은 치유사는 자신의 형제들로부터 감사를 받기를 원하지만, 그들에게 감사하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이 그들에게 무언가를 주고 있지만, 그 보답으로 무언가 동등한 가치가 있는 것을 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배우는 것이 너무 적어서, 가르치는 것도 제한된다. 그는 감사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가르치는 치유의 레슨에 한계를 부과한다. 감사하지 않음은 병을 가르치는 레슨이다. 배움은 끊임없이 일어나며, 변화를 위한 권능이 너무도 강렬해서, 하느님의 아들은 한 순간 자신의 권능을 인식하고는 다음 순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바꿈으로써, 변화를 위해 창조된 것 가운데 가장 강력한 도구를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48 이것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대로의 마음의 불변성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하지만 네가 에고를 통해 배우는 한, 너는 네가 그것을 바꿔버렸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너는 모순돼 보이는 레슨을 배워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즉, 너는 너의 마음에 대한 너의 마음을 바꾸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오로지 이런 방법을 통해서만, 너는 너의 마음이 변함없음을 배울 수 있다. 치유할 때 너는 정확하게 바로 이것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너는 네 형제의 내면에서 변함없는 마음을 인식하는데, 그가 자신의 마음을 바꿔버렸을 수 없음을 깨달음으로써 그렇게 한다. 너는 바로 이런 식으로 네 형제의 내면에서 성령을 지각한다. 자신의 마음을 결코 바꾸지 않는 것은 오로지 그의 내면에 있는 성령뿐이다. 네 형제는 자신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자신이 병들었다고 지각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자아가 참으로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49 네가 네 형제 안에서 오로지 변하지 않는 것만 보더라도, 그를 전혀 바꾼 것이 아니다. 너는 그를 위해 그의 마음에 대한 너의 마음을 바꿈으로써, 에고가 그의 내면에 일으켰다고 생각하는 변화를 그가 무효화하도록 돕는 것이다. 너는 두 음성을 들을 수 있듯이, 두 가지 방법으로 볼 수 있다. 한 방법은 너에게 어떤 이미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상을 하나 보여주는데, 너는 그것이 두려운 나머지 숭배할 수는 있어도 결코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방법은 너에게 오로지 진리만을 보여주며, 너는 그것을 이해할 것이므로 사랑할 것이다. 이해하는 것은 곧 진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너는 네가 이해하는 것과 동일시할 수 있으며, 그것을 너의 일부로 만듦으로써 사랑으로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50 바로 이것이 하느님이 친히 너를 창조하신 방법이다. 그분은 너를 이해하기와 진가를 알아보기, 그리고 사랑으로 창조하셨다. 에고는 이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에고는 자신이 만드는 것을 이해하지 않고, 그 진가를 알아보지 않으며, 사랑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에고는 빼앗기 위해 통합한다. 에고는 그야말로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을 때마다 자신이 증가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종종 너의 창조물들에 의한 왕국의 증가에 대해 말했는데, 그것들은 오로지 네가 창조된 방식으로만 창조될 수 있다. 정녕 왕국 자체인 모든 영광과 지극한 기쁨이 네 안에 놓여있어서, 너로 하여금 주게 한다. 너는 그것을 주기를 원하지 않는가?

51 내가 너와 함께 있고 나는 아버지를 잊을 수 없으므로, 너는 아버지를 잊을 수 없다. 네가 나를 잊는 것은 곧 너 자신은 물론 너를 창조하신 분도 잊는 것이다. 우리 형제들은 너무 잘 잊는다. 이런 까닭에, 그들에게는 네가 나를 기억하고 나를 창조하신 분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기억하기를 통해, 내가 너의 마음을 바꿀 수 있듯이 너도 그들 자신에 대한 그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 너의 마음은 너무도 강렬한 빛이라서, 내가 너의 마음을 밝힐 수 있듯이 너도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밝힐 수 있다. 나는 영성체에서 내 몸을 공유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를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극히 거룩하신 아버지의 지극히 거룩한 자녀들과 환상을 공유하려 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정녕 나의 마음을 너와 공유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정녕 한 마음에서 나왔으며, 그 마음은 정녕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52 모든 곳에서 오로지 이 마음만 보라. 오로지 이 마음만이 정녕 모든 곳과 모든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음은 정녕 모든 것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그 자체 안에 모든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이것만 지각하는 너는 정녕 축복받았도다. 그럴 때 너는 오로지 참인 것만 지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게로 와서 네 안의 진리에 대해 배워라. 우리가 공유하는 마음은 우리의 모든 형제들에 의해 공유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참으로 볼 때, 그들이 치유될 것이다. 너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더불어 그들의 마음을 환히 비추게 하고, 그들에 대한 우리의 감사를 통해 그들이 자신 안의 빛을 알아차리게 하라.

53 이 빛은 너와 온아들 전체를 되비쳐 줄 것이다. 그것은 네가 하느님께 드리는 합당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그것을 받으셔서 온아들에게 주실 것이다. 그것은 그분이 흡족해하시고, 따라서 온아들이 흡족해하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영의 진정한 교통이다. 영은 모든 이의 내면에서 하느님의 제단을 보며, 그것의 진가를 네가 알아보게 함으로써, 너에게 하느님과 그분의 창조물들을 사랑할 것을 요청한다. 너는 온아들의 진가를 오로지 하나로서만 알아볼 수 있다. 이것은 창조 법칙의 일부이며, 따라서 모든 생각을 지배한다.

제7장 왕국의 일관성 - Ⅴ. 진리를 인식하기제7장 왕국의 일관성 - Ⅶ. 경계해 깨어있음에서 평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