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죄에 대한 믿음은 곧 조정이다. 그리고 조정은 변화며, 지각의 변동, 혹은 어떤 것이 전과는 달라졌다는 믿음이다. 따라서 모든 조정은 왜곡이며, 실재에 맞서 조정을 떠받치기 위한 방어수단을 필요로 한다. 앎은 어떤 조정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사실 어떤 변동이나 변화가 시도되면 앎은 상실된다. 그러한 시도는 앎을 즉시 지각으로 격하하기 때문이다. 지각이란 확실성이 상실되고 의심이 끼어든, 보는 방식에 불과하다. 이렇게 손상된 상태에는 과연 조정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조정은 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는 이해하기 위해 오로지 너의 정체만을 요청하거늘, 네가 왜 진리에 맞춰 조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17 모든 조정은 에고의 산물이다. 에고는 어떤 관계든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려면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니 간섭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직접적인 관계는 항상 위험하다고 본다. 에고는 자칭 모든 관계의 중재자로서, 필요하다고 보는 어떤 조정이든 시도하고, 만나려는 사람들을 분리하고 그들의 연합을 막기 위해 그들 사이에 조정을 끼워 넣는다. 이러한 의도적 간섭이야말로, 너희의 거룩한 관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18 거룩한 자들은 진리를 간섭하지 않는다. 그들은 진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진리 안에서 자신의 거룩함을 인식하고는, 자신이 본 것에 기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리를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을 진리에 맞춰 조정하거나 진리를 자신에 맞춰 조정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진리가 자신 안에 있음을 보았다. 그들은 진리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먼저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바라봄은 단지 질문을 했을 뿐이며, 그들이 바라본 것이 그들에게 답했다. 너는 세상을 만든 다음에 거기에 맞춰 너 자신을 조정하고, 세상을 너에게 맞춰 조정한다. 너의 지각 안에서 너 자신과 세상은 아무런 차이도 없다. 둘 다 너의 지각이 만든 것이다.
19 하지만 단순한 질문이 하나 남아서 답을 필요로 한다. 너는 네가 만든 것을 좋아하는가? 그것은 살인과 공격의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너는 기껏해야 죽음이 너를 따라잡아 없애버리기 전에 조금 더 오래 기다려줄 것을 바라면서, 위험이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홀로 두려움에 떨며 자신 없이 걸어간다. 네가 이런 것을 지어냈다. 그것은 네가 너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보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살인자는 겁에 질려있고, 죽이는 자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조정 때문에 무섭게 되어버린 세상에 맞춰 자신을 조정하려는 자들의 무시무시한 생각일 뿐이다. 그들은 슬픔에 잠겨 내면의 슬퍼하는 자의 눈으로 바깥을 내다보고는, 그곳에서 슬픔을 본다.
20 세상이 실제로 어떠한지, 행복한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한 적이 없는가? 네가 보는 세상은 단지 너 자신에 대한 판단일 뿐이다. 세상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판단은 세상에게 형을 선고하고, 세상을 정당화하며, 세상을 실재화한다. 이러한 것이 바로 네가 보는 세상으로서, 그것은 네가 너 자신에게 내리는 판단이다. 에고는 너 자신에 대한 이런 병든 그림을 정성스레 보존하는데, 그것은 에고의 이미지자 에고가 사랑하는 것으로서 너의 바깥 세상에 놓여있다. 이런 그림이 바깥에 있으면서 너를 무자비하게 휘두른다고 믿는 한, 너는 이런 세상에 맞춰 너를 조정해야 한다. 그 세상은 정녕 무자비하며, 그것이 너의 바깥에 있다면 너는 정녕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무자비하게 만든 것은 바로 너였다. 그리고 이제 그 무자비함이 너를 돌아보는 것 같다면, 그것은 교정될 수 있다.
21 거룩한 관계 안에 있는 자가 과연 얼마나 오래 거룩하지 않게 남아있을 수 있겠는가? 에고가 바라보는 세상이 에고를 닮았듯이, 거룩한 자들이 보는 세상은 그들과 하나다. 거룩한 자들이 보는 세상은 아름답다. 그들은 세상에서 자신의 순결을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에게 세상이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았고, 세상을 자신의 지시에 맞추기 위해 조정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세상에게 부드럽게 물으면서 속삭였다: "너는 무엇인가?" 그리고 모든 지각을 보살피는 성령이 그 질문에 대답했다. 세상의 판단을,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받아들이지 말라.
22 세상은 죄를 믿지만, 세상을 네가 보는 대로 만든 그 믿음은 너의 바깥에 있지 않다. 하느님의 아들을 그의 정신 이상에 맞춰 조정하려고 하지 말라. 그의 안에는 진리의 집에 함부로 흘러들어 왔다가 흘러 나갈 낯선 자가 있다. 그자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왔지만, 성령이 선사하여 네가 받아들인 찬란한 빛 앞에서 계속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그 낯선 자가 집을 잃고 네가 반가이 맞아들여지기 때문이다.
23 이 떠돌이 낯선 자에게 "나는 무엇인가?"라고 묻지 말라. 그는 온 우주에서 알지 못하는 유일한 자다. 하지만 너는 바로 그에게 물었고, 그의 대답에 맞춰 너를 조정하려고 한다. 그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지만 너무도 작고 무의미해서 진리의 우주를 스쳐지나갈 때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못할 이 거친 생각 하나가 너의 안내자가 된다. 너는 그것에게 돌아서서 우주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진리의 우주 전체가 눈을 뜨고 보는데, 그중에서 유일하게 보지 못하는 자에게 너는 "내가 하느님의 아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24 너는 판단력이 전혀 없는 것에게 판단을 요청하는가?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너는 그 답을 믿고 그것이 진리라도 되는 양 그에 맞춰 너를 조정하려 하는가? 네가 바라보는 세상이 곧 그것이 네게 준 답이며, 너는 그 답을 참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세상을 조정할 힘을 그것에게 부여했다. 너는 한 줌 연기 같은 이 미친것에게 너의 거룩하지 않은 관계의 의미를 물었고, 그것의 정신 나간 답에 맞춰 그 관계를 조정했다. 그것이 너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는가? 너는 하느님의 아들을 만날 때, 그를 축복하고 그가 네게 건넨 그 모든 행복에 감사하려고 기쁘게 만났는가? 너희는 서로를 하느님이 주시는 영원한 선물로 인식했는가? 너희는 상대방을 축복하기 위해 두 사람 안에서 빛나는 거룩함을 보았는가? 이것이 바로, 너희의 거룩한 관계의 목적이다. 여전히 그 관계를 거룩하지 않게 만들려는 그 유일한 것에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을 요청하지 말라. 수단과 목적을 조정할 그 어떤 권능도 그것에게 부여하지 말라.
25 긴 세월을 무거운 사슬에 묶여 굶주리고 야위고 약하고 지쳤으며, 너무도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눈을 내리깔고 있었기에 빛을 기억하지 못하는 죄수들은, 풀려난다고 해서 그 즉시 기뻐하며 뛰어오르지 않는다. 자유가 정녕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그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너희는 힘없이 먼지 속을 더듬다 서로의 손을 발견했지만, 그냥 지나칠 것인지 아니면 그토록 오래 잊었던 생명을 붙잡을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서로의 손을 더욱 꼭 붙잡고, 눈을 들어 너의 굳센 동반자를 보라. 그의 내면에 네 자유의 의미가 놓여있다. 그는 네 옆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듯했지만, 그의 거룩함은 전혀 훼손되지 않은 채 완벽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네 곁의 그와 함께, 너는 오늘 낙원으로 들어가 하느님의 평화를 알게 되리라.
26 이러한 것이 너희 두 사람 모두를 위한 나의 뜻이며, 너희가 서로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뜻하기를 바라는 나의 뜻이다. 여기에는 오로지 거룩함과 무한한 결합만이 있다. 직접적이고 완벽하며, 두려움의 장막이 가리지 않은 연합 외에 과연 무엇이 천국이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하나며, 서로를, 그리고 우리 자신을 완벽한 온유함으로 바라본다. 여기서는 우리 사이에 어떤 분리의 생각도 불가능해진다. 분리 안에서 죄수였던 너희는 이제 낙원 안에서 자유로워졌다. 여기서 나는, 나의 친구들이자 형제들이며 나의 자아인 너희와 연합하고자 한다. 너희가 서로에게 준 선물은 나에게 우리의 연합이 임박했다는 확신을 안겨주었다.
27 그러니 이런 믿음을 나와 공유하고, 그것에 정당한 근거가 있음을 알라. 완벽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그것은 죄를 알지 못하고, 다른 이들을 자기 자신을 보듯이 보기 때문이다. 자비로 안을 보거늘, 그것이 바깥의 무엇을 두려워할 수 있겠는가? 순결한 자들은 안전을 보며, 마음 깊이 순수한 자들은 하느님의 아들 안에서 하느님을 보고, 그가 자신을 아버지께 인도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들이 과연 자신이 있고자 뜻하는 곳 외에 어디로 가겠는가? 하느님이 당신의 아들을 거룩하게 창조하셔서 거룩하게 지켜주신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이제 너희는 서로를 아버지께 인도할 것이다. 네 형제 안에, 너의 불멸에 대한 하느님의 영원한 약속의 빛이 있다. 그를 죄 없다고 보라. 그러면 네 안에 어떤 두려움도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