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이 세상에서 네가 좋고 가치 있고 얻으려고 애쓸 만하다고 믿는 모든 것이 너를 해칠 수 있으며, 반드시 해칠 것이다. 그것에 해칠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네가 그것이 단지 환상일 뿐임을 부정하고 실재화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녕 너에게 실제다. 그것은 무가 아니며, 그것의 지각된 실재성을 통해 병적인 환상의 세상 전체가 들어왔다. 죄, 공격의 힘, 상처와 해침, 희생과 죽음에 대한 모든 믿음이 너에게 왔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하나의 환상을 실재화하면서 나머지 환상에서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누가 자신이 선호하는 환상을 간직하기로 선택하면서 진리만이 줄 수 있는 안전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그 누가 환상들은 모두 똑같다고 믿으면서 그중 하나가 제일 나은 환상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45 환상 하나를 유일한 친구삼아 너의 짧은 삶을 고독하게 살지 말라.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에게 어울리지도 않고 만족을 줄 수도 없는 우정이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에게 내면에 땅과 천국의 모든 권능을 지닌 더 좋은 친구를 주셨다. 네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환상 하나가 너에게 그 친구의 은혜와 위엄을 가려, 너로 하여금 그의 우정과 용서를 반가이 맞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그 친구가 없다면, 너에게는 정녕 친구가 없다. 그의 자리를 대신할 다른 친구를 구하지 말라. 다른 친구란 없다. 하느님이 지명하신 것에는 대체품이 없다. 과연 어떤 환상이 진리를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46 그림자와 함께 사는 자는 과연 혼자지만, 외로움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너는 그림자 하나가 하느님이 너의 친구를 위해 명하신 왕좌를 찬탈하게 하려는가? 그 왕좌가 비워지면 너의 왕좌가 비워져 궐위 상태가 됨을 깨닫는다면 말이다. 어떤 환상도 친구 삼지 말라. 만약 친구로 삼는다면, 환상은 하느님이 너의 친구로 호명하신 자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가 바로 진리 안에서 너의 유일한 친구인 자다. 그 친구는 너에게 이 세상 것이 아닌 선물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그 선물이 주어진 그 친구만이 네가 그것을 받도록 보장할 수 있다. 네가 그의 왕좌에 그의 자리를 마련할 때, 그는 그 선물을 너의 왕좌에 올려놓을 것이다.
47 이것은 기적을 가르치는 수업이다. 따라서 이 수업의 목적을 이루려면 치유의 법칙을 이해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다룬 원리들을 복습하고, 치유가 가능하기 위해 일어나야 하는 모든 것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원리들을 정리해 보자. 치유가 일단 가능해지면, 치유는 반드시 일어나기 때문이다. 모든 병은 분리에서 비롯된다. 분리가 부정되면, 병은 사라진다. 병을 일으킨 아이디어가 치유되고 제정신으로 대체되는 즉시, 병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성의 빛을 피해 철저히 보존하려고 의식에서 감춰진 관계에서, 병과 죄는 결과와 원인으로 간주된다.
48 죄의식은 처벌을 요청하며, 그 요청은 수락된다. 그러나 진리 안에서가 아니라, 죄 위에 세워진 그림자와 환상의 세상 안에서 수락된다. 하느님의 아들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을 지각한다. 지각이라는 것은 정녕 성취된 소망이기 때문이다. 지각은 변함없는 앎을 대체하려고 만들어졌기에, 변한다. 하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진리는 지각될 수 없고, 알려질 수만 있을 뿐이다. 지각된 것은 많은 형식을 취하지만, 어떤 형식에도 의미는 없다. 그것을 진리 앞으로 가져오면, 그 무의미함이 아주 분명해진다. 그것을 진리와 떼어 놓으면, 그것은 의미가 있고 실제인 듯이 보인다.
49 지각의 법칙은 진리와 정반대며, 앎에 해당되는 것은 앎과 무관한 그 어떤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느님은 병의 세상에, 병의 모든 형식에 적용되는 응답을 주셨다. 하느님의 응답은 영원하다. 비록 그 응답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시간 안에서 작동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응답은 정녕 하느님에게서 왔기에, 작동할 때 시간의 법칙에 영향받지 않는다. 그 응답은 이 세상에 있지만, 이 세상의 일부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제며, 모든 실재가 있는 곳에 머물러 살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자신의 근원을 떠나지 않으며, 아이디어의 결과는 단지 아이디어와 떨어져 있는 듯이 보일 뿐이다. 아이디어는 마음의 산물이다. 밖으로 투사되어 마음의 외부에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은 전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안에 있는 것의 결과로서, 그 근원을 떠난 적이 없다.
50 하느님의 응답은 죄에 대한 믿음이 있는 곳에 있다. 오로지 그곳에서만 그 믿음의 결과가 완전히 무효화되고 원인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각의 법칙은 반드시 뒤집혀야 한다. 그것은 진리의 법칙이 뒤집힌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의 법칙은 영원히 참이고 뒤집힐 수 없지만, 뒤집힌 것으로 보일 수는 있다. 그리고 이것은 뒤집힘의 환상이 있는 곳에서 교정되어야 한다.
51 하나의 환상이 나머지 환상들보다 진리에 덜 복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몇몇 환상들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여, 그것들을 치유와 도움을 위해 진리에 제공하겠다는 용의를 덜 내는 것은 가능하다. 그 어떤 환상도, 자신 안에 일말의 진리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어떤 환상은 다른 환상들보다 더 참인 듯이 보인다. 물론 전혀 말도 안 되지만 말이다. 환상들의 위계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지 선호도일 뿐, 실재가 아니다. 선호도가 진리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환상은 단지 환상이며, 거짓이다. 네가 선호한다고 해서 환상이 실재가 되지는 않는다. 단 하나의 환상도 어떤 식으로든 참이 아니며, 모든 환상은 하느님이 그 모두에게 주신 답에 똑같이 쉽게 굴복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의 뜻은 하나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듯한 그 어떤 소망도 진리 안에 토대가 없다.
52 죄는 잘못이 아니다. 죄는 교정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 교정이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가 실제라는 믿음은 몇몇 잘못을 영원히 치유될 가망이 없는 것, 지옥을 위한 영원한 근거로 보이게 만들었다. 이것이 그러하다면, 천국은 천국만큼이나 실제인 천국 자체의 대립물과 대립할 것이다. 하느님의 뜻은 둘로 갈라지고, 대립하는 두 힘이 모든 창조물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은 마침내 인내심을 잃고 세상을 갈라놓아서 당신을 공격하게 하실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당신의 마음을 잃으시고는, 죄가 당신의 실재를 빼앗아 마침내 당신의 사랑을 복수에 굴복시켰다고 선언하실 것이다. 이렇게 제정신이 아닌 그림을 위해서는 제정신이 아닌 방어를 예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그 그림을 참이라고 입증할 수는 없다.
53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곳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진리는 참이 되기 위해 그 어떤 방어도 필요하지 않다. 환상에는 증인도 없고 결과도 없다. 환상을 바라보는 자는 다만 속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용서는 유일한 기능으로서, 세상이 부정하는 기쁨을 죄의 지배를 받는다고 여겨졌던 하느님 아들의 모든 측면에게 가져다주는 역할을 한다. 아마도 너는 죄의식의 안개에서 피어오르는 모든 믿음과 죽음을 종식하는 과정에서 용서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를 것이다.
54 죄는 네가 네 형제와 너 자신 사이에 강요하는 믿음이다. 죄는 너희를 시간과 장소에 제한하며, 약간의 공간은 너에게, 다른 약간의 공간은 네 형제에게 준다. 이러한 분리는 네가 지각하기에 분명히 분리되고 떨어져 있는 몸에 의해 상징화된다. 하지만 이런 상징은 단지 떨어지고 분리되어 있으려는 너의 소망을 나타낼 뿐이다. 용서는 네 형제와 너 자신 사이에 서있는 것을 치워버린다. 용서는 네가 그와 떨어지지 않고 결합되어 있으려는 소망이다. 우리가 용서를 "소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용서는 여전히 다른 선택 대안들이 있다고 상정하며, 선택의 세상 너머에 아직 완전히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5 하지만 이러한 소망은 천국의 상태와 일치하며,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다. 비록 그 소망은 너에게 모든 유산을 주기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네가 있는 곳인 천국과 네가 어디에 있고 너의 정체는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 사이에 네가 설치한 장애물을 제거한다.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부정되어 알려지지 않을 수는 있다. 비록 부정되기 전에는 알려져 있었지만 말이다.
56 완벽하고 완성된 구원은 단지 참인 것이 참이어야 한다는 작은 소망,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간과하려는 작은 용의, 죽음과 황폐함이 지배하는 듯한 이 세상보다 천국을 더 원하여 내쉬는 작은 탄식을 요청할 뿐이다. 이에 기쁘게 응답하여 네 안에서 창조가 일어나 네가 보는 세상을 더없이 완벽하고 완성된 천국으로 대체할 것이다. 진리가 참이어야 한다는 용의 외에 무엇이 용서겠는가? 치유되지 않고 남아서, 그 자체 안에 모든 것을 포함한 단일성과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죄는 없다. 하느님의 아들이 자신의 소망과 하느님의 뜻이 하나임을 지각하는 순간, 모든 기적이 가능해진다.
57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가?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이 모든 것을 소유하기를 뜻하신다. 당신의 아들을 모든 것으로 창조하셨을 때, 하느님은 바로 이것을 보장하셨다. 네가 소유한 것이 곧 너의 존재라면, 무엇이든 상실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로 이 기적에 의해, 너는 창조라는 기능을 갖게 되어 그것을 하느님과 공유하게 되었다. 그 기능은 하느님과 떨어져서는 이해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이 세상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58 이곳에서 하느님의 아들은 너무 많이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적게 요청한다. 그는 자신만의 하찮은 보물을 찾기 위해 자신이 모든 것이라는 정체성을 희생하려 한다. 그러면서 그가 고립감과 상실감, 외로움을 겪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 느낌이야말로 그가 찾으려 했던 보물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두려워할 수만 있을 뿐이다. 두려움이 과연 보물인가? 불확실성이 과연 네가 원하는 것일 수 있겠는가? 아니면 그것은 너의 뜻과 너의 진정한 정체에 대한 착각인가? 그렇다면 여기서 과연 무엇이 잘못인지 살펴봄으로써, 잘못이 보호받는 대신에 교정될 수 있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