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특별한 관계에 대한 추구는 너 자신을 하느님이 아닌 에고와 동일시한다는 표시다. 특별한 관계는 오로지 에고에게만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에고는 특별한 가치가 없는 관계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보며, 모든 사랑을 특별하다고 지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스러울 수 없다. 그것은 하느님과 그분 아들 사이의 관계와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다른 모든 관계는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느님은 사랑을 당신이 원하는 대로 창조하셔서 있는 그대로 주셨다. 사랑의 창조주께서 당신의 뜻으로 정의하신 의미 외에, 사랑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사랑을 다른 식으로 정의하면서 사랑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60 사랑은 자유다. 너 자신을 속박함으로써 사랑을 구하는 것은 너 자신을 사랑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더 이상 분리에서 연합을 구하지도 속박에서 자유를 구하지도 말라! 너는 놓아주는 대로 놓여날 것이다. 이를 잊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사랑은 너를 찾아내 위로할 수 없을 것이다. 네가 성령의 도움을 받고자 할 때, 성령이 너의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거룩한 순간은 특별한 관계의 진짜 미끼인 죄의식의 매력으로부터 너를 보호하기 위해 성령이 사용하는 가장 유용한 도구다. 너는 죄의식이야말로 특별한 관계의 진짜 매력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에고는 그동안 특별한 관계 안에 자유가 놓여있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별한 관계를 더 자세히 살펴볼수록, 그것은 반드시 죄의식을 조장한다는 것, 따라서 반드시 감금한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61 몸이 없는 특별한 관계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네가 만약 특별한 관계에 가치를 둔다면, 또한 몸에도 가치를 두는 것이다. 그리고 너는 네가 가치를 두는 것을 반드시 간직할 것이다. 특별한 관계는 너의 자아를 몸에 제한하고, 다른 이들에 대한 너의 지각을 그들의 몸에 제한하기 위한 도구다. 네가 위대한 빛줄기들을 보게 된다면, 특별한 관계는 아무런 가치도 없음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것들을 볼 때, 몸은 그 가치를 잃고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는 몸을 보는 데 기울인 투자를 전부 거둬들이게 된다. 너는 네가 가치를 두는 세상을 본다.
62 다리의 이쪽 편에서 너는 분리된 몸들의 세상을 보는데, 그 몸들은 별개의 분리된 연합체들 안에서 서로 결합하려 하고 상실을 통해 하나가 되려 한다. 두 개인이 하나가 되려고 할 때, 그들은 자신의 위대함을 축소하려는 것이다. 각자는 자신의 권능을 부정할 것이다. 별개의 분리된 연합은 우주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합에서는 그 안으로 갖고 들어가려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밖에 남겨진다. 하느님이 밖에 남겨지시는 반면, 들어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결합 중에 단 하나라도 완벽한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면, 우주가 그 안으로 들어가리라. 하지만 에고가 구하는 특별한 관계는 심지어 단 한 명의 온전한 개인조차 포함하지 않는다. 에고는 단지 그의 일부만을 원하며, 단지 그 부분만 볼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지 않기 때문이다.
63 다리를 건너면 너무나 달라진다! 몸은 한동안 보이겠지만, 여기서처럼 단지 몸만 보이지는 않는다. 그곳에서는 자신 안에 위대한 빛줄기들을 간직한 작은 불꽃 또한 보인다. 그리고 이 불꽃은 오랫동안 작게 제한되어 있을 수 없다. 일단 다리를 건너면, 네가 보기에 몸의 가치는 너무나 축소되어 너는 더 이상 몸을 과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때 너는, 몸이 가진 유일한 가치는 너로 하여금 네 형제들을 다리로 데려와서 그곳에서 너와 함께 해방될 수 있게 하는 것임을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64 다리 자체는 실재에 대한 관점의 전환에 불과하다. 이쪽 편에서는, 네가 보는 모든 것이 지독히 왜곡되어 관점의 균형을 완전히 잃었다. 작고 대수롭지 않은 것은 확대되고, 힘 있고 강력한 것은 작게 축소되어 있다. 그런 전환이 일어나는 동안 실제로 지남력 장애가 일어나는 것 같은 혼동의 시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것은 단지 너의 세상을 지탱해 주는 듯했던 왜곡된 준거틀에 대한 집착을 네가 포기할 용의를 내었음을 의미할 뿐이다. 이 준거틀은 특별한 관계를 중심으로 세워져 있다. 이런 환상이 없다면, 네가 여전히 여기서 구하고자 하는 어떤 의미도 있을 수 없다.
65 네가 갑작스레 들려 실재 안으로 내던져질까 봐 두려워하지 말라. 시간은 친절하며, 네가 실재를 위해 시간을 사용한다면, 너의 전환 과정에서 너와 부드럽게 보조를 맞출 것이다. 이곳에 고착된 너의 마음을 빼내는 것만이 급선무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준거틀도 없이 집 없는 신세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실재적인 전환에 선행하는 지남력 장애의 기간은, 너의 마음을 그렇게도 단단히 환상에 고착시키는 데 걸린 시간보다는 훨씬 더 짧다. 이제 지연은 전보다 너에게 더 해로울 것이다. 그 이유는 단지 그것이 지연이며,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함을 네가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더 이상 이곳의 그 어떤 특별한 관계에서도 사랑의 환상조차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이 말에서 절망이 아닌 희망과 위로를 발견하라. 너는 더 이상 완전히 미치지 않았으며, 자기 배반의 죄의식을 그 정체대로 인식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66 네가 특별한 관계에서 강화하려 하는 그 무엇도 실제로 너의 일부가 아니다. 너의 사고체계는 너에게 자신이 실제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네가 그것의 일부를 간직하려 한다면, 너의 정체를 실제로 아는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너는 너의 실재에 대한 생각이 네 마음에 들어오도록 허락했으며, 그 생각은 네가 초대했기에 반드시 네 곁에 머물 것이다. 그 생각에 대한 너의 사랑은 네가 너 자신을 배반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너는 그 생각과 함께 갈 수 없는 그 어떤 관계도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너는 그 생각과 떨어져 있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다.
67 에고가 제공한 엉터리 구원에서 벗어났음에 기뻐하고, 에고가 너의 관계들을 가지고 만들어낸 모조품을 그리워하면서 뒤돌아보지 말라. 이제 그 누구도 고통받을 필요가 없다. 죄의식의 아름다움과 거룩함에 대한 환상에 굴복하기에는, 너는 너무 멀리 왔기 때문이다. 완전히 미친 자들만이 죽음과 고통, 병과 절망을 바라보고는 아름답고 거룩하다고 여길 수 있다. 죄의식이 초래한 것은 추하고 무시무시하며, 아주 위험하다. 거기서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한 환상을 보지 말라. 그리고 진리와 아름다움이 너를 기다리는 곳이 정녕 있음에 감사하라. 가서 그것들을 기쁘게 만나고, 무가 단지 무에 불과하기 때문에 포기하려는 단순한 용의에 대한 대가로 얼마나 많은 것이 너를 기다리는지 배워라.
68 다리를 건너면 얻게 될 새로운 관점은 천국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이해다. 이곳에서 볼 때 천국은 바깥에, 그리고 다리 건너에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네가 천국과 결합하려고 다리를 건너면, 천국은 너와 결합하여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깜짝 놀라 기뻐하면서, 그 모든 것을 얻기 위해 네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저마다의 빛이 천국에 있는 자신의 정당한 자리를 차지하러 돌아올 때마다, 천국의 무한한 기쁨이 늘어난다. 하느님과 너의 사랑을 위해, 더 이상 기다리지 말라. 거룩한 순간이 너의 길을 재촉하기를! 네가 단지 거룩한 순간이 오도록 허용하기만 한다면, 거룩한 순간은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이다.
69 성령은 네게 단지 이런 작은 도움만을 청할 뿐이다. 너를 여전히 끌어당기는 특별한 관계 속으로 너의 생각이 빠져들 때마다, 성령과 함께 거룩한 순간에 들어가라. 그리고 그곳에서 성령이 너를 해방하게 하라. 성령이 너에게 자신의 관점을 완전히 주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그것을 공유하려는 너의 용의뿐이다. 그리고 너의 용의는 완전할 필요가 없다. 성령의 용의가 완벽하기 때문이다. 너의 용의 없음을 자신의 완벽한 믿음으로 속죄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임무다. 그리고 이러한 성령의 믿음이야말로, 네가 거룩한 순간에 성령과 공유하는 것이다. 너 스스로 해방되려는 용의가 없음을 인식할 때, 성령의 완벽한 용의가 너에게 주어진다. 성령을 불러라. 성령의 부름에 천국이 달려온다. 그리고 성령으로 하여금 너를 대신하여 천국을 부르도록 허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