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특별한 관계를 자세히 살펴볼 때, 먼저 그것이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불안과 절망, 죄의식과 공격이 전부 그 관계 속으로 들어오며, 중간에 잠깐씩 그것들이 사라진 듯이 보이는 기간이 끼어든다. 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들이 어떤 형식을 취하든, 항상 상대방을 유죄로 만들기 위해 자아를 공격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에도 이 점에 대해 말한 적이 있지만, 그런 관계에서 실제로 시도되는 특정한 측면들은 아직 다루지 않았다.
44 아주 단순히 말해, 유죄로 만들려는 시도는 항상 하느님을 겨냥한다. 에고는 네가 오로지 하느님만을 유죄라고 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온아들은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 특별한 사랑 관계는 에고가 너를 천국에서 떼어놓으려고 사용하는 주된 무기다. 그 관계는 무기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네가 그것에 가치를 얼마나 두는지, 그리고 왜 두는지를 잘 숙고해 본다면, 그 관계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특별한 사랑 관계는 에고가 가장 뽐내는 선물이며, 죄의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선물이다. 여기서 에고의 "역동"이 가장 뚜렷이 나타난다. 이러한 선물의 매력에 의존하여, 그것을 중심으로 하는 판타지들이 종종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판타지들은 보통 받아들일 만하다고, 심지어 자연스럽다고 판단된다. 그 누구도 사랑하면서 동시에 증오하는 것을 기이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증오가 죄라고 생각하는 자들조차 죄의식을 느끼기만 할 뿐 교정하지는 않는다.
45 이것이 실로 분리의 "자연스러운" 상태다. 그리고 그것이 전혀 자연스럽지 않음을 배우는 자들은 자연스럽지 않은 자들처럼 보인다. 이 세상은 천국의 반대가 되도록 만들어졌기에, 정녕 천국의 반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의 모든 것은 참인 것과 정반대의 방향을 취한다. 사랑의 의미가 알려진 천국에서는, 사랑이 연합과 똑같다. 사랑 대신에 사랑의 환상이 받아들여지는 이곳에서는, 사랑이 분리와 배제로 지각된다.
46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에 대한 감춰진 소망에서 태어난 특별한 관계에서, 에고의 증오가 승리한다. 특별한 관계는 하느님의 사랑을 포기하고 그분이 거절하신 특별성을 자아를 위해 확보하려는 시도기 때문이다. 네가 이러한 특별성을 지옥이 아닌 천국이라고 믿는 것은 에고의 보존을 위해 아주 중요하다. 분리는 천국이 있을 수 없는 유일한 조건으로서 그저 상실에 지나지 않지만, 에고는 네가 이것을 깨닫도록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47 누구에게나 천국은 완성이다. 에고와 성령은 모두 이것을 받아들이므로, 여기에 불일치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둘은 완성이 정녕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성취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성령은, 완성이란 먼저 연합 안에, 이어서 연합의 확장 안에 놓여있음을 안다. 에고에게, 완성이란 승리 안에, 그리고 그 "승리"가 마침내 하느님마저 이길 정도로 확장하는 데 놓여있다. 여기서 에고는 자아의 궁극적인 자유를 본다. 에고를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실로 천국에 대한 에고의 아이디어다. 이로부터, 연합은 분명 지옥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것은 에고가 방해할 수 없는 상태기 때문이다.
48 특별한 관계는 에고가 지옥과 천국을 결합하여 그 둘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들려고 사용하는 이상하고 부자연스러운 도구다. 두 세상 모두에서 가공의 "최선"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단지 두 세상 모두에 대한 판타지로 이어져, 결국 어떤 세상도 있는 그대로 지각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특별한 관계는 이런 혼동의 승리다. 특별한 관계는 연합이 배제되는 일종의 연합으로서, 그런 연합 시도의 바탕에는 배제가 있다. 에고의 좌우명인 "구하되 찾지는 말라."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례가 어디 있겠는가?
49 무엇보다 가장 괴상한 것은 에고가 특별한 관계에서 조장하는 자아 개념이다. 그 "자아"는 자기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그런 관계를 구한다. 하지만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특별한 관계를 발견하면, 그 자아는 자기 자신을 주어버리고 상대방의 자아와 자신을 "교환"하려고 한다. 이것은 연합이 아니다. 여기에는 증가도 확장도 없기 때문이다. 각 파트너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자아를 희생하여 자신이 더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아를 얻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빼앗는 "죄"로 인하여, 그리고 그 대가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을 주는 "죄"로 인하여, 죄의식을 느낀다. 더 나은 자아를 얻기 위해 주어버리고 싶어 하는 자아를 그가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길 수 있겠는가?
50 에고가 구하는 "더 나은" 자아는 언제나 더 특별한 자아다. 그리고 특별한 자아를 소유한 듯이 보이는 자는 그로부터 빼앗아 올 수 있는 바로 그것 때문에 "사랑받는다." 두 파트너가 서로에게서 이런 특별한 자아를 보는 곳에서, 에고는 "하늘이 맺어 준 연합"을 본다. 두 사람 중 누구도 자신이 지옥을 요청했음을 인식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에고가 천국을 방해하기 위해 제공한 천국에 대한 환상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환상은 두려움에서 나오며, 다른 어떤 것에서 나온 것일 수 없다. 그러므로 천국에 대한 환상이란 죄의식이 깊이 파묻혀 있다가 "사랑"의 형식으로 떠오르는 "매력적인" 형식의 두려움에 불과하다.
51 지옥의 매력은 단지 죄의식의 맹렬한 끌어당김 안에 놓여있다. 에고는 왜소함을 믿는 자들에게 바로 이것을 제시한다. 모든 특별한 관계 안에는 왜소함에 대한 확신이 놓여있다. 오로지 가난한 자들만이 특별성에 가치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성을 요구하는 것, 그리고 특별성을 주는 것을 사랑의 행위로 지각하는 것은 사랑을 혐오스럽게 만들 것이다. 특별한 관계의 진짜 목적은 에고의 목표에 철저히 부합하며, 그것은 실재를 파괴하여 환상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에고 자체가 하나의 환상이며, 환상들만이 에고의 "실재성"에 대한 증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52 네가 만약 특별한 관계를 하느님에 대한 승리로 지각한다면, 과연 그런 관계를 원하겠는가? 특별한 관계의 두려운 특성에 대해서도, 그런 관계가 수반할 수밖에 없는 죄의식에 대해서도, 슬픔과 외로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말자. 그것들은 단지 분리의 종교 전체와 분리가 일어났다고 생각되는 전체 정황의 속성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종교에서 희생에 바치는 장황한 기도의 중심 주제는, 하느님이 돌아가셔야만 네가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야말로 특별한 관계 안에서 실연實演되는 것이다. 너는 너의 자아의 죽음을 통해 상대방의 자아를 공격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그것을 빼앗아 와서 그것으로 네가 경멸하는 자아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네가 너의 자아를 경멸하는 이유는, 그것이 네가 요구하는 특별성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는 너의 자아를 증오함으로써 두려워하게 되었으므로, 그것을 왜소하고 무가치하게 만들어 버렸다.
53 네가 공격했다고 생각하는 것에게, 네가 과연 어떻게 무한한 권능을 부여할 수 있겠는가? 너는 진리를 너무도 두려워하게 되어서, 진리가 약하고 왜소하고 무가치하지 않는 한 감히 바라보려 하지도 않는다. 너는 진리로부터 강탈한 권능을 네가 만든 왜소한 자아에게 부여함으로써, 진리를 이겨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례가 특별한 관계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거행되는지 보라. 분리된 두 사람 사이에 제단이 세워지고, 각 사람은 그 위에서 자신의 자아를 죽인 후 자신의 몸 위에 다른 자아를 세우려 한다. 그리고 그 다른 자아는 그의 죽음으로부터 자신의 권능을 얻는다. 이런 의례는 거듭거듭 거행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완성되지 않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완성에 대한 의례는 완성될 수 없으며, 죽음에서 생명이 일어나지도 않고, 지옥에서 천국이 일어나지도 않기 때문이다.
54 어떤 형식의 특별한 관계에서든 의례에서 사랑을 구하려는 유혹을 느낄 때마다, 사랑은 내용이지 어떤 종류의 형식도 아님을 기억하라. 특별한 관계는 일종의 형식에 대한 의례로서, 그 목적은 내용을 희생하는 대가로 형식을 들어올려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는 것이다. 형식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 특별한 관계는 하느님의 죽음에서 힘을 빼내서, 형식이 내용을 이겼고 사랑이 그 의미를 잃었다는 표시로서 하느님을 죽인 자에게 그 힘을 부여하는 어리석은 의례에 불과하다. 이것을 그 정체대로 인식해야 한다. 이것이 명백히 불가능함은 별문제로 하고, 너는 정녕 이것이 가능하기를 원하려는가?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너는 이미 너 자신을 무력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하느님은 분노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단지 이것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실 수 없었을 뿐이다. 너는 하느님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
55 너는 네가 만든 의례에서 죽음의 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지만, 그 어떤 의례도 영원에게 죽음을 가져다줄 수 없다. 그리고 네가 하느님의 온전성 대신에 선택한 그 어떤 대체품도 그것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특별한 관계에서 단지, 하느님 앞에 다른 신들을 들어올려 숭배함으로써 그들의 하찮음과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가리려는 무의미한 시도만을 보라. 너의 완성의 이름으로, 너는 이것을 원하지 않는다. 네가 하느님 앞에 놓으려고 들어올리는 모든 우상은 너의 정체를 대신해 네 앞에 서있기 때문이다.
56 환상은 참이 아니므로 무섭지 않다는 단순한 사실, 여기에 구원이 놓여있다. 환상은 단지 네가 환상을 그 정체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정도만큼만 무서워 보일 뿐이다. 그리고 너는 환상이 참이기를 원하는 정도만큼 환상을 그 정체대로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꼭 그 정도만큼 너는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진리와 환상, 하느님과 판타지 사이의 단순한 선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라. 그러면 그 결정을 단지 그 정체대로 지각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57 분리 망상의 핵심은 단지 사랑의 의미를 파괴하는 판타지 안에 놓여있다. 사랑의 의미가 너에게 회복되지 않는 한, 너는 너 자신을 알 수 없다. 너는 사랑의 의미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분리란 단지 너 자신을 알지 않겠다는 결정에 불과하다. 분리의 사고체계 전체는 너를 진리에서 끌어내어 판타지 속으로 데려가려고 주도면밀하게 고안된 학습 경험이다. 하지만 하느님은 너에게, 너를 해칠 그 모든 배움에 대한 교정법과 그런 배움의 모든 결과에서 완벽하게 탈출할 수단을 제공하신다. 이 수업에 귀 기울일지 말지, 이 수업을 따를지 말지의 결정은 단지 진리와 환상 사이의 선택일 뿐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진리가 환상과 분리되어 전혀 혼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58 이 선택을 단지 그 정체대로 지각할 때, 그것이 얼마나 단순해지는지! 오로지 판타지만이 선택에 있어 혼란을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판타지는 전혀 실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는 네가 여태껏 당면한 결정 중에 가장 쉽고도 유일한 결정을 내리는 해다. 너는 다리를 건너 실재 안으로 들어갈 텐데, 그 이유는 단지 건너편에는 하느님이 계시고 이쪽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인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달을 때, 자연스러운 결정을 하지 않기란 정녕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