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우리는 정녕 온아들의 결합된 뜻이다. 그리고 온아들의 온전성은 모든 이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함께 출발함으로써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하며, 계속 함께 걸어가면서 우리의 형제들을 모아들인다. 우리는 힘을 얻을 때마다 그것을 모든 이에게 나눠주며, 그리하여 그들도 자신의 약함을 내려놓고 우리에게 힘을 보탤 수 있게 된다. 하느님의 환대가 우리 모두를 기다린다. 내가 너를 반가이 맞아들이듯, 하느님도 우리를 반가이 맞아들이실 것이다. 세상이 무엇을 제공하든, 그것 때문에 하느님의 왕국을 망각하지 말라. 하느님과 그분의 거룩한 아들들의 권능과 영광에, 세상은 아무것도 보탤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세상은 그들의 눈을 가려 아버지를 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느님을 알 수는 없다. 그중 단 하나만 참이다.
43 둘 중에 무엇이 참인지는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에게 이것을 말해주려고 왔다. 그것이 만약 너의 선택이었다면, 너는 너 자신을 파괴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은 당신의 창조물들의 파괴를 뜻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들을 영원히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뜻은 너를 이미 구했지만, 너 자신으로부터가 아니라 너 자신에 대한 너의 환상들로부터 구했다. 그분은 너를 너 자신을 위해 구하셨다. 세상이 부정하는 하느님을 찬미하자. 세상은 그분의 왕국을 지배할 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는 영원한 것 외의 그 어떤 것에서도 기쁨을 찾을 수 없다. 이것은 그가 다른 어떤 것을 박탈당해서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도 그에게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들이 창조하는 것은 영원하며, 그들의 기쁨은 오로지 이것에만 놓여있다.
44 돌아온 탕자 이야기에 귀 기울여라. 그리고 무엇이 하느님의 보물이고 너의 보물인지 배워라: 자애로운 아버지를 둔 아들은 집을 떠나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탕진했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는 당시에 그것의 무가치함을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는 아버지를 상심케 했다고 생각하여, 아버지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를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를 기쁘게 맞아들였다. 오로지 그 아들만이 정녕 아버지의 보물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다른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다.
45 하느님은 오로지 당신의 아들만을 원하신다. 그는 당신의 유일한 보물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당신의 창조물들을 원하시듯, 너도 너의 창조물들을 원한다. 너의 창조물들은 네가 성 삼위일체에게 주는 선물로서, 네가 창조된 것에 대한 감사로 창조되었다. 네가 너의 창조주를 떠나지 않았듯이, 그들도 너를 떠나지 않으며,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너에게 확장하셨듯이 너의 창조를 확장한다. 하느님 자신의 창조물들이 과연 실제가 아닌 것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하느님의 창조물들 외에, 그리고 그분의 창조물들과 닮게 창조되는 창조물들 외에, 과연 무엇이 실제이겠는가? 창조의 선물을 주신 것에 대해 너의 영혼이 아버지를 사랑하듯이, 너의 창조물들은 너를 사랑한다. 그것 외에 영원한 선물은 없으며, 따라서 그것 외에 진정한 선물은 없다.
46 그렇다면 네가 어찌 다른 어떤 것을 받아들이거나 주면서 그 대가로 기쁨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너는 기쁨 외에 다른 무엇을 원하려는가? 너는 너 자신도, 너의 기능도 만들지 않았다. 너는 단지 그 둘에 어울리지 않는 가치 없는 존재가 되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뿐이다. 하지만 너는 너 자신을 가치 없게 만들 수는 없었다. 너는 정녕 하느님의 보물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가치 있게 여기시는 것은 정녕 가치가 있다. 그것의 가치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의 가치 전체는,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그것과 공유하심으로써 그 가치를 영원히 확립하시는 것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47 너의 기능은, 너의 보물을 창조함으로써 하느님의 보물을 늘리는 것이다. 너에 대한 하느님의 뜻은 너를 위한 하느님의 뜻이다. 그분은 너에게서 창조 기능을 거둬들이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의 기쁨은 창조에 있기 때문이다. 너는 오로지 하느님이 기쁨을 찾으시는 것처럼만 기쁨을 찾을 수 있다. 그분의 기쁨은 너를 창조하시는 데 있으며, 그분은 당신의 부성을 너에게 확장하심으로써 너도 당신처럼 너 자신을 확장할 수 있게 하신다. 너는 하느님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의 기능을 모르는 자는 그 누구도 이것을 이해할 수 없으며, 자신이 정녕 누구인지 모르는 자는 그 누구도 자신의 기능을 알 수 없다. 창조는 하느님의 뜻이다. 그분의 뜻은 너를, 창조하도록 창조했다. 너의 뜻은 그분의 뜻과 분리된 채로 창조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분이 뜻하시듯이 뜻한다.
48 "뜻하지 않으려 하는 뜻"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실제로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용어상의 모순이기 때문이다. 너는 오로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방식을 통해서만 너 자신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 네가 하느님과 함께 뜻하기를 뜻하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할 때, 너는 전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은 정녕 생각이다. 그것은 생각에 의해 부정될 수 없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부정하지 않으시며, 그분을 닮은 아들들도 그들 자신이나 그분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너무도 강력해서, 만약 그러기로 선택한다면, 심지어 하느님 아들의 마음을 감금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선택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기능을 알지 못하게 만들지만, 결코 그의 창조주까지 그렇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의 기능은 그의 창조주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히 그가 알 수 있는 것으로 남아있다.
49 너 자신에게 물어야 할 단 하나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나를 위한 아버지의 뜻을 알기를 원하는가?" 아버지는 그것을 감추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나에게 그것을 드러내 보여주셨다. 나는 그분께 그것을 요청하여, 그분이 이미 주신 것에 대해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능은 함께 기능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떨어져서는 전혀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 아들의 모든 권능은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안에 있다. 하느님은 우리가 홀로 있게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홀로 계시기를 뜻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그분은 아들을 창조하셔서, 그에게 당신과 함께 창조하는 권능을 주셨다.
50 우리의 창조물들은 우리만큼이나 거룩하며,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들이므로 하느님만큼이나 거룩하다. 우리는 우리의 창조물들을 통해 우리의 사랑을 확장하며, 그럼으로써 성 삼위일체의 기쁨을 늘린다. 너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느님의 보물인 너는 너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다. 이런 믿음이 있는 한, 너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하느님이 너에게 부여하시는 가치에 대한 앎을 그분과 공유한다. 너에 대한 나의 헌신은 하느님에게서 비롯되었으며, 나 자신과 하느님에 대한 나의 앎에서 생겨났다. 우리는 정녕 분리될 수 없다. 하느님이 결합해 놓으신 자들은 분리될 수 없으며, 그분은 당신의 아들들 모두를 당신 자신과 결합해 놓으셨다. 네가 과연 너의 생명, 너의 존재와 분리될 수 있겠는가?
51 하느님께 가는 여정은 단지 네가 항상 어디에 있는지, 너의 정체는 영원히 무엇인지에 대한 앎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것은 전혀 바뀐 적이 없는 목적지를 향한 거리가 없는 여정이다. 진리는 오로지 경험될 수 있을 뿐이다. 진리는 묘사될 수도 설명될 수도 없다. 나는 네가 진리의 조건을 알아차리게 해줄 수는 있지만, 그 경험은 하느님에게서 온다. 우리는 함께 그 조건을 충족할 수 있지만, 진리는 너에게 스스로 분명해질 것이다.
52 하느님이 너를 위해 뜻하신 것은 정녕 네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당신의 보물에게 주셨으며, 그분의 뜻은 바로 그 보물의 보물이다. 하느님의 마음이 당신의 보물이 있는 곳에 있듯이, 너의 마음도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있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여, 너는 온전히 축복받았다. 이것을 나에게 배워서, 너처럼 축복받은 모든 이의 거룩한 뜻을 자유로이 풀어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