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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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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27장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21분

제27장 몸과 꿈

Ⅷ. 고통이라는 환상

62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세상이 너를 해치려고 행한 모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서 구원에 대한 세상의 미친 해석을 뚜렷이 볼 수 있다. 마치 꿈꾸는 자가 무엇이 자신을 공격했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처벌의 꿈처럼, 그는 자신이 부당하게, 그리고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에 의해 공격받는다고 본다. 그는 이 "다른 무엇"의 희생자다. 그것은 그의 바깥에 있는 것으로서, 그로서는 전혀 책임질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는 분명 결백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무엇이 행해지는지는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자기 자신을 공격한다는 점은 여전히 명백하다. 왜냐하면, 고통을 감내하는 자는 바로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는 고통의 근원이 바깥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63 이제 나는 네가 정녕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문제를 네가 정한 방식으로 보는 대신에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문제가 비록 아주 단순하더라도, 그것의 해결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복잡한 먹구름에 가려져 있다면, 그것을 달리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구름이 없다면, 문제는 그 원초적인 단순성으로 드러날 것이다. 선택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를 분명히 보면, 그것은 아주 터무니없기 때문이다. 어떤 단순한 문제가 너를 해치고 있기는 하지만 아주 쉽사리 제거될 수 있음을 본다면, 너는 그 문제가 해결되게 하겠다고 어렵지 않게 결심할 것이다.

64 세상을 만들고, 세상이 기초하고, 세상이 유지되는 "논리"는 단순히 다음과 같다: "네가 바로 내 행위의 원인이다. 네가 있다는 사실이 나의 노여움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너는 나와 떨어져 존재하고 생각한다. 네가 공격하는 한, 나는 결백할 것이다. 내가 고통받는 것은 바로 너의 공격 때문이다." 이런 "논리"를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본다면, 그것이 논리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치에 맞지도 않다는 것을 보지 못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이치에 맞아 보이는 이유는, 세상이 너를 해친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뻔한 것을 두고 다른 데서 원인을 찾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65 그러나 정녕 다른 데서 원인을 찾을 필요가 있다. 세상을 정죄에서 해방하는 것은 세상에 있는 자들이 함께 공유하는 필요다. 하지만 그들은 그 공동의 필요를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각자는, 만약 그가 자신의 역할을 하면 세상에 대한 정죄가 자신에게 놓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이것이 세상의 구원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이라고 지각한다. 복수에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수하는 자는 스스로 칼을 쥐고 자신을 겨누게 된다. 그가 만약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공격의 희생자가 되고자 한다면, 칼을 다른 사람의 손에서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들고 있지 않은 칼이 입힌 상처 때문에 고통받는다. 이것이 바로 그가 보는 세상의 목적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볼 때, 세상은 이런 목적을 이루어주는 듯이 보이는 수단을 제공한다.

66 수단은 목적을 입증하지만, 그 자체로 원인은 아니다. 또한 원인을 그 결과와 떼어놓고 본다고 해서 원인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원인은 결과를 낳으며, 결과는 이어서 결과 자체가 아닌 원인에 대해 증언한다. 그렇다면 결과 너머를 보라. 결과는 고통과 죄의 원인이 있는 곳이 아니다. 그리고 고통과 죄를 곱씹지 말라. 그것들은 단지 그 원인이 반영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67 세상을 정죄에서 구출하는 데서 네가 맡은 역할은, 너 자신이 벗어나는 것이다. 악의 세상에 대한 증인은 세상에서 악의 필요성을 본 것만을 대변해 말한다는 점을 잊지 말라. 그리고 이곳은 너의 죄의식을 처음으로 본 곳이다. 네가 네 형제로부터 분리해 나올 때, 너 자신에 대한 첫 번째 공격이 시작되었다. 세상은 바로 이것을 증언한다. 이것 외에 다른 원인을 구하지도 말고, 죄의식의 증인들의 막강한 무리 가운데서 죄의식의 무효화를 기대하지도 말라. 죄의식의 증인들은 너의 충성을 요구하는 죄의식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진리를 감추는 것들은 네가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바라보아야 할 곳이 아니다. 죄의 증인들은 모두 하나의 좁은 공간에 서있다. 너는 바로 이곳에서 네가 세상에 대해 가진 관점의 원인을 발견한다.

68 너는 한때 네가 초대하지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세상이 너에게 억지로 떠안기는 듯한 모든 일의 원인이 정말로 무엇인지 자각하지 못했다. 너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일으킨다고 지각한 수많은 원인들 가운데 너의 죄의식은 없었으며, 너는 어떤 식으로든 고통과 괴로움을 스스로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 이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바로 이런 식으로 모든 환상이 발생한다. 환상을 만드는 자는 자신이 환상을 만들고 있다고 보지 않으며, 환상의 실재성도 그에게 달려있지 않다. 환상의 어떤 원인이든 그와는 동떨어져 있고, 그가 보는 것은 그의 마음과 별개다. 그는 꿈의 실재성을 의심할 수 없다. 그는 꿈을 만들고 꿈을 실재적으로 보이도록 만드는 데서 자신이 하는 역할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69 세상이 자기 대신 꾸어주는 꿈에서 깨어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는 다른 사람이 꾸는 꿈의 일부가 된다. 그는 자신이 만들지 않은 꿈에서 깨어나겠다고 선택할 수 없다. 그는 어떤 별개의 마음이 상상하고 소중히 여기는 꿈의 희생자로서, 무력하게 서있다. 그 마음은 분명 그를 전혀 배려하지 않을 것이며, 그날의 날씨나 시간만큼이나 그의 평화와 행복에 대해 무신경하다. 그 마음은 그를 사랑하지 않으며, 자신의 꿈을 만족시키는 배역이라면 아무 곳에나 그를 던져 넣는다. 그는 너무도 가치가 없어서, 다만 세상의 헛된 꿈꾸기 속에서 상상된 무의미한 줄거리에 따라 위아래로 날뛰고 춤추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70 네 꿈을 꾸는 자가 네가 아니라면, 이것이 네가 볼 수 있는 유일한 그림이자 네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며, 원인이 될 수 있는 다른 하나의 가능성이다. 괴로움의 원인이 너의 마음 안에 있음을 부정한다면, 너는 바로 이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 원인이 정녕 너의 마음 안에 있음에 기뻐하라. 그런 까닭에 너는 시간 안에서 네 운명의 유일한 결정자기 때문이다. 잠들어 있는 죽음과 악몽을 선택할지, 행복한 깨어남과 생명의 기쁨을 선택할지는 너에게 달려있다. 생명과 죽음, 깨어남과 잠듦, 평화와 전쟁, 너의 꿈과 너의 실재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 외에 네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선택권이 정말로 너에게 주어져 있다면, 너는 선택 대안들의 원인을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그것들이 있는 곳에서 보아야 한다. 네가 만약 두 상태 중에 단 하나만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 수 있겠는가? 네가 만약 두 결과 중에 단 하나만 너에게 달려있다고 본다면, 과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겠는가?

71 네 안의 진리에 대해 서로 다른 꿈을 꾸는, 작디작은 너와 거대한 세상 사이의 선택은 정직한 선택이라고 지각될 수 없다. 실재와 꿈 사이의 간격은 세상의 꿈꾸기와 너의 은밀한 꿈 사이에 있지 않다. 그 꿈들은 똑같다. 세상의 꿈꾸기는 단지 네 꿈의 일부로서, 너는 그것을 주어버리고는 그것이 마치 네 꿈의 시작이자 끝인 듯이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너의 은밀한 꿈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꿈은 네가 보고 실제임을 의심치 않는 부분을 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그 꿈을 지각하지 않는다. 네가 잠에 빠져 그 부분의 원인이 실제라고 은밀하게 꿈꾸는 한, 그 부분을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는가?

72 너와 분리되어 있는 형제, 오랜 원수, 밤에 뒤를 밟아 너를 죽이려고 꾀하는, 그러나 질질 끌며 서서히 죽이기를 계획하는 살인마, 너는 이것들을 꿈꾼다. 하지만 이런 꿈 아래에는 또 하나의 꿈이 있다. 그 꿈속에서 너는 살인마, 은밀한 적, 네 형제와 세상을 다 파괴하여 그 썩은 고기를 먹는 자가 된다. 여기에 고통의 원인, 너의 꿈과 너의 실재 사이의 공간이 있다. 네가 볼 생각도 하지 않는 이 작은 간격, 환상과 두려움의 출생지, 공포와 오랜 증오의 시간, 재앙의 순간, 이 모든 것이 여기에 있다. 여기에, 비실재의 원인이 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그 원인이 무효화될 것이다.

73 네가 바로 꿈들의 세상을 꿈꾸는 자다. 세상에는 다른 원인이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 헛된 꿈 하나가 하느님의 아들을 공포로 몰아넣어서, 그가 자신의 순결을 잃고,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했으며, 자신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보다 더 무시무시한 말이 어디 있겠는가? 그 꿈은 너무도 무시무시하고 너무도 실재적으로 보이므로, 깨어나기 전에 보다 부드러운 꿈이 일어나 그의 마음을 더욱 진정시켜서, 깨어나라고 사랑스럽게 부르는 음성을 두려움 없이 환영할 준비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괴로움이 치유되고 형제가 친구가 되는 보다 온유한 꿈이다.] 그렇지 않은 한 그는 공포의 식은땀과 죽을 듯한 비명 없이는 실재로 깨어날 수 없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이 부드럽고 기쁘게 깨어나기를 뜻하셔서, 그에게 두려움 없이 깨어날 수단을 주셨다. 너의 꿈 대신에 하느님이 주신 꿈을 받아들여라. 일단 꿈꾸는 자를 인식하기만 하면, 꿈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다.

74 성령 안에서 안식하며, 그의 부드러운 꿈이 네가 공포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꾸었던 꿈을 대체하게 하라. 성령은 용서하는 꿈을 가져다준다. 그 꿈에서는 누가 살인자고 누가 희생자가 되어야 하는지 선택하지 않는다. 성령이 가져다주는 꿈에는 정녕 살인도 없고 죽음도 없다. 너의 눈은 비록 감겨있지만, 죄의식의 꿈은 너의 시야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너의 잠든 얼굴을 환히 밝히려고 미소가 찾아왔다. 이제 잠은 평화롭다. 이것은 행복한 꿈이기 때문이다.

75 너의 죄 없는 형제를 부드럽게 꿈꿔라. 그는 거룩한 결백 속에서 너와 연합한다. 그 꿈으로부터, 천국의 주님이 몸소 당신의 사랑받는 아들을 깨우실 것이다. 네 형제가 네 꿈속에서 범한 실수를 곱씹는 대신에 그의 친절함을 꿈꿔라. 그가 준 상처를 헤아리는 대신에 그의 사려 깊음을 꿈꾸기로 선택하라. 그의 환상들을 용서하고, 그가 준 모든 도움에 감사하라. 그가 너의 꿈속에서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가 준 수많은 선물을 무시하지 말라.

76 네 형제는 그의 아버지를 나타내며, 너는 그분이 너에게 생명뿐만 아니라 죽음도 제공하신다고 본다. 형제여, 아버지는 생명만 주신다. 하지만 네가 네 형제의 선물이라고 보는 것은, 네가 너에게 주시는 아버지의 선물이라고 꿈꾸는 것을 나타낸다. 네 형제의 모든 선물을, 너에게 제공되는 자비와 친절함의 빛 속에서 보라. 그의 선물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너의 꿈을 그 어떤 고통도 방해하게 하지 말라.

제27장 몸과 꿈 - Ⅶ. 고통의 목적제27장 몸과 꿈 - Ⅸ. 꿈의 "주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