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네 안의 그리스도는 아주 고요하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바라보고는, 그것을 자기 자신으로 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보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 그는 그것이 자신과 하나고 아버지와도 하나임을 알기 때문이다. 특별성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보는 것에서 기쁨을 얻는다. 비록 그것이 참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너는 네가 기쁨의 근원이라고 여기는 것을 구한다. 네가 소망하는 것은 너에게 참이다. 네가 무언가를 소망하면서 그것이 참이라고 믿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뜻이 창조하듯이 확실하게, 소망하기는 실재적으로 만든다. 사랑이 그 자체를 확장하듯이 강력하게, 소망의 힘은 환상을 떠받쳐준다. 하나는 현혹하고 다른 하나는 치유한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41 너 자신의 정죄를 피할 수 있는 특별성의 꿈이란 없다. 그 형식이 아무리 감춰져 있거나 위장되었든, 그것이 아무리 사랑스럽게 보이든, 평화의 희망과 고통에서의 해방을 아무리 많이 정교하게 제공하든 상관없다. 꿈속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어 있다. 그곳에서, 꿈을 만든 자는 자신이 만든 것이 자신에게 일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여기서 실 한 오라기, 저기서 헝겊 한 조각을 집어 들어 무를 가지고 그림 하나를 엮어냈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림의 부분들은 서로 어울리지 않으며, 전체는 부분들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어떤 기여도 하지 못한다.
42 너의 평화가 과연 용서가 아닌 어디에서 생겨날 수 있겠는가? 네 안의 그리스도는 진리만을 바라보며, 용서가 필요할 수도 있는 정죄의 근거는 보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죄를 보지 않기 때문에, 평화롭다.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라. 그러면 네가 갖지 않은 무엇을 그가 가졌겠는가? 그리스도는 너의 눈이자 귀며, 너의 손이자 발이다. 그가 보는 모습과 듣는 소리는 얼마나 온유한지! 자신의 형제의 손을 잡은 그리스도의 손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의 곁에서 얼마나 사랑스럽게 걷고 있는지! 그러면서 그리스도는 그에게,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어디에 가면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을 것인지 알려준다.
43 하지만 너의 특별성에게 그의 길을 인도하게 하면, 네가 그 길을 따라갈 것이다. 너희 둘은 잠시 반짝이다 곧 꺼져버릴 작고 흔들리는 죄의 반딧불에 간신히 의지하여 보이지 않는 어두운 숲속을 위태롭게 걸어가면서, 각자 상대방을 이름 없는 절벽으로 끌고 가서 밀쳐버리려고 한다. 특별성이 과연 살인 외에 무엇을 즐기겠는가? 특별성이 과연 죽음을 보는 것 외에 무엇을 구하겠는가? 특별성이 과연 파괴가 아닌 어느 곳으로 인도하겠는가? 하지만 행여나 특별성이 네 형제를 먼저 보고, 너를 증오하기 전에 그를 증오했다고 생각하지 말라. 특별성은 네 형제에게서 보고 기뻐하며 바라보는 죄를 네 안에서 먼저 보았으며, 여전히 그것을 기뻐하며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부패와 광기를 바라보고는, 살은 다 떨어져 나가 뼈만 남고 눈이 있던 자리엔 시커먼 구멍만 남은 이 바스러지는 것이 너 자신을 닮았다고 믿는 것이 정녕 기쁨인가?
44 너에게 볼 눈과 들을 귀와 붙잡을 손과 인도할 발이 없음에 기뻐하라. 너에게 그것들이 필요한 동안,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것을 빌려줄 수 있음에 기뻐하라. 너의 눈과 귀와 손과 발처럼, 그리스도의 것들도 환상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다른 목적을 섬기므로, 그 목적이 지닌 힘이 그것들에 부여된다. 그리스도의 눈이 보고 귀가 듣고 손이 잡고 발이 인도한 것에 빛이 주어져, 너로 하여금 네가 인도된 대로 인도할 수 있게 한다.
45 네 안의 그리스도는 아주 고요하다. 그는 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며, 너를 그곳으로 온유하게 인도하면서 가는 내내 축복해 준다. 하느님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네가 너 자신 안에서 보았다고 생각한 그 모든 두려움을 대체한다. 그리스도의 거룩함은 네가 손을 잡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자 안에 있는 그리스도 자신을 너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네가 보는 것은 너 자신을 닮았다. 왜냐하면, 네가 보고 듣고 사랑하고 집으로 따라갈 것이 그리스도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그는 너를 먼저 바라보았지만, 네가 완성되어 있지 않음을 인식했다. 따라서 그는 그가 바라보고 사랑하는 각각의 살아있는 것들 안에서 너의 완성을 구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것을 구함으로써, 그것들마다 너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제공하게 한다.
46 하지만 그리스도는 조용하다. 그리스도는 사랑이 지금 네 안에 있으며, 네 형제의 손을 잡은 바로 그 손에 의해 네 안에 안전하게 간직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손은 그의 내면에서 그의 모든 형제들을 붙들고 있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보지 못하는 눈을 위하여 비전을 주고, 그들의 귀가 더 이상 전쟁과 죽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천국에 대해 노래를 불러준다. 그는 그들을 통해 다가가 손을 내밀어서, 모든 이로 하여금 살아있는 만물을 축복하고 그 거룩함을 볼 수 있게 한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모습이 네가 그와 함께 바라보고는 그의 기쁨을 공유할 네 것임에 기뻐한다. 그는 너에게 특별성의 완벽한 부재를 제공함으로써 너로 하여금 살아있는 만물을 죽음에서 건져내게 하여, 너의 용서가 너의 자아에게 제공하는 생명의 선물을 그것들 하나하나로부터 받게 한다. 그리스도의 모습이 볼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그리스도의 노래가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그리스도의 손이 잡을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여정 외에 다른 여정이란 없다.
47 특별성에 만족하고 사랑과의 전쟁 속에서 구원을 구하려는 자여, 다음에 대해 잘 생각해 보라: 천국의 거룩하신 주님이 몸소 너에게 내려오셔서 너 자신의 완성을 제공하신다. 그분의 것은 곧 너의 것이다. 너의 완성 안에 그분의 완성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아들 없이 계시고자 뜻하지 않으신 주님은 결코 너에게 형제가 없기를 뜻하실 수 없었다. 그러한 주님이 너에게, 너 자신만큼 완벽하고 그 거룩함이 너처럼 주님을 닮은 형제를 주시지 않겠는가?
48 갈등이 있으려면, 그 전에 먼저 의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의심은 분명 너 자신에 대한 의심이다. 그리스도는 의심이 전혀 없으며, 그의 조용함은 그의 확신에서 비롯된다. 그리스도는 너와 하나며, 이 하나인 상태는 끝이 없고 무시간적이며, 너의 손은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에 너의 손에 이 하나인 상태가 놓여있다는 것에 네가 동의한다면, 그리스도는 너의 모든 의심을 그의 확신과 맞바꿔 줄 것이다. 그리스도는 네 안에 있지만, 네 옆과 앞에서 걸으면서 그 자신의 완성을 찾기 위해 가야 하는 길을 인도한다. 그의 조용함은 너의 확신이 된다. 그리고 확실성이 왔을 때, 의심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