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비교는 분명 에고의 도구다. 사랑은 비교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성은 항상 비교한다. 특별성은 상대방에게서 보이는 결점에 의해 확립되며, 지각할 수 있는 결점을 모조리 찾아서 눈에 잘 보이게 함으로써 유지된다. 특별성은 바로 이것을 구하며, 바로 이것을 바라본다. 특별성이 이렇게 축소시킨 자는, 네가 그를 네 특별성의 작디작은 잣대로 만들어버리지 않았다면, 항상 너의 구원자가 되었으리라. 네가 그에게서 보는 왜소함에 비하면 너는 크고 당당하며, 깨끗하고 정직하며, 순수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채 서있다. 하지만 너는, 그렇게 함으로써 네가 축소하고 있는 자는 너 자신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13 특별성의 추구는 언제나 평화를 대가로 치른다. 그 누가 자신의 구원자를 공격하여 쓰러트리면서도 여전히 그의 강력한 지원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그 누가 자신의 구원자의 전능함을 훼손하면서도 여전히 그의 권능을 공유할 수 있겠는가? 또한 그 누가 자신의 구원자를 왜소함의 잣대로 사용하면서도 한계에서 해방될 수 있겠는가? 너는 구원에서 맡은 기능이 있고, 그 기능을 추구하면서 기쁨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특별성에 대한 추구는 너에게 고통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구원을 무산시켜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특별성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곧 너 자신에 대한 환상이 진리보다 더 소중하다는 이질적인 뜻을 중히 여기는 것이다.
14 특별성이란, 죄라는 아이디어가 실재화된 것이다. 이러한 근거 없이는 죄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죄는 무를 재료 삼아 특별성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무런 뿌리도 없는 악의 꽃이다. 여기에 스스로 만든 "구원자", 아버지와 다르게 창조하며 그분의 아들을 아버지가 아닌 자기 자신을 닮게 만든 "창조자"가 있다. 그의 "특별한" 아들들은 결코 하나가 아닌 여럿이며, 각각의 아들은 자신이 그 일부인 아버지와 자기 자신을 떠나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을 아버지와 하나로 창조한 하나인 상태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천국과 평화 대신에 자신의 특별성을 선택했으며, 그것을 조심스레 죄로 감싸서 진리로부터 "안전하게" 지킨다.
15 너는 특별하지 않다. 너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여 네 진정한 정체의 진리에 맞서 너의 특별성을 방어하려 한다면, 네가 어찌 진리를 알 수 있겠는가? 특별성이야말로 네가 귀 기울이는 대상이고, 특별성이야말로 실제로 묻고 응답하는 자일 때, 성령이 주는 어떤 응답이 너에게 도달할 수 있겠는가? 특별성의 희미한 응답, 너의 정체를 아름답게 찬미하여 하느님이 영원히 쏟아부어 주시는 멜로디 속에서 소리 없는 그 응답이 네가 귀 기울여 듣는 모든 것이다. 따라서 너의 정체를 존경하고 사랑하여 부르는 그 웅장한 노래는 특별성의 "막강함" 앞에서 침묵하고 들리지 않는 듯하다. 너는 특별성의 소리 없는 음성을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16 너는 물론 너의 특별성을 방어할 수 있지만, 그러면 결코 그 옆에 있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 둘은 다른 언어로 말하며, 다른 귀에 도달한다. 각각의 특별한 자들에게는 다른 의미를 가진 다른 메시지가 진리다. 하지만 진리가 어떻게 각자에게 다를 수 있겠는가? 특별한 자들이 듣는 특별한 메시지는 그들이 서로 다르고 서로 떨어져 있으며, 각자는 자신의 특별한 죄 안에 있고, 사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설득한다. 그러나 사랑은 그들의 특별성을 전혀 보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비전은 그들의 "적"이다. 그것은 그들이 보려는 것을 보지 않으며, 그들이 본다고 생각하는 특별성이 환상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들이 대신에 무엇을 보겠는가?
17 하느님 아들의 찬란한 광휘는 아버지를 너무도 닮아서, 그것을 보는 즉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마음에 솟아오른다. 그리고 아들은 이 기억과 함께 자신의 창조물들을 기억한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았듯이, 아들의 창조물들은 아들을 닮았다. 그리고 그가 만든 온 세상과 그의 모든 특별성, 그가 자신의 특별성을 지키려고 자기 자신에 맞서 붙잡고 있던 모든 죄가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그의 마음이 그 자신에 대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러한 진리가 돌아와 그 모든 것의 자리를 차지함에 따라.... 진리의 유일한 "대가"는 다음과 같다: 너는 더 이상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것을 보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 것을 듣지 않을 것이다. 무를 포기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히 받는 것이 과연 희생인가?
18 자신의 구원자를 자신의 특별성에 사슬로 옭아매고, 그 대신에 자신의 특별성에게 구원자의 자리를 내준 자여, 다음을 기억하라: 너는 너의 구원자와 너를 위해 그에게 주어진 구원의 기능 사이에 너의 모든 죄를 가로막아 놓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그 죄를 용서할 힘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너는 그의 기능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네가 그의 내면과 너 자신의 내면에 있는 진리를 바꿀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리는 두 사람 안에서 똑같다는 점을 명심하라. 진리는 서로 다른 메시지들을 주지 않으며, 단 하나의 의미만 가지고 있다. 그 의미는 너희 두 사람 모두가 이해할 수 있고, 두 사람 모두에게 해방을 안겨주는 의미다. 여기에, 네 형제가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손에 들고 서서 너에게 내밀어 주고 있다. 너희 사이에 특별성의 꿈이 남아있게 하지 말라. 본래 하나인 것은 진정으로 결합되어 있다.
19 네 형제를 마치 친구를 보듯이 바라볼 때 너 자신 안에서 보게 될 사랑스러움에 대해 생각해 보라. 그는 정녕 특별성의 적이지만, 네 안에서 실제인 것의 유일한 친구다. 네가 그에게 가했다고 생각하는 어떤 공격도, 하느님이 너에게 주라고 그에게 주신 선물을 빼앗아 가지 못했다. 그가 그 선물을 주어야 할 필요성은 네가 그 선물을 가질 필요성만큼이나 절실하다. 그로 하여금 너의 모든 특별성을 용서하게 하고, 너의 마음을 온전하게 하여 너를 그와 하나로 만들게 하라. 그는 단지 너의 용서를 너에게 다시 돌려주기 위해 너의 용서를 기다리고 있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을 정죄하지 않으셨다. 단지 너만이, 하느님 아들의 특별성을 지키고 그의 자아를 죽이기 위해 그를 정죄했다.
20 너는 진리의 길을 따라 멀리 왔다. 이제 머뭇거리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의 모든 자취가 사랑 안에서 녹아 사라질 것이다. 네 형제의 특별성과 너의 특별성은 서로 적이며, 증오로 얽혀 서로를 죽이려 하면서 서로 같다는 것을 부정한다. 하지만 하느님과 천국을 너무도 멀리 떼어놓아 도저히 도달할 수 없어 보이게 만드는 이 마지막 장애물 앞에 도달한 것은 환상들이 아니다. 여기, 이 거룩한 장소에 진리가 조용한 축복과 평화 속에 서서 너희를 맞이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너무도 실재적이고 포괄적이어서 그 무엇도 바깥에 남겨두지 않는 평화다. 너 자신에 대한 모든 환상을, 네가 희망을 품고 정직하게 오는 이 장소 바깥에 남겨두어라.
21 여기에, 너를 너의 특별성에서 구해주는 구원자가 있다. 네가 그의 일부로 받아들여질 필요가 있듯이, 그는 너의 일부로 받아들여질 필요가 있다.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닮으셨듯이, 너희는 하느님을 꼭 닮았다. 하느님은 특별하지 않으시다. 하느님은 당신 정체의 한 부분을 아들에게 주지 않고 혼자 간직하려 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네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만약 하느님이 특별하지 않으시다면, 당신의 아들도 당신과 닮기를 뜻하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네 형제도 정녕 너와 닮아서 특별하지는 않지만, 너를 포함한 모든 것을 가졌을 것이다.
22 하느님은 사랑이 결코 나뉘거나 그 정체와 분리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것을 선택하셨다. 그런 분이 당신 자신을 너희 둘 모두에게 똑같은 사랑으로 주셔서 당신과 우주를 공유하게 하셨음을 기억하면서, 네 형제에게 단지 그가 가진 것을 주어라. 너는 정녕 네 형제의 것이며, 사랑의 일부는 그에게 부정되지 않았다. 그가 완성되어 있다고 해서 네가 잃었을 수 있겠는가? 그에게 주어진 것은 그를 완성하듯이 너도 완성한다. 하느님의 사랑은 너를 네 형제에게 주고 네 형제를 너에게 주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똑같은 것은 하느님과 하나다. 하느님과 네가 하나라는 진리야말로 천국이자 마침내 눈앞에 보이는 평화의 희망이건만, 오로지 특별성만이 그것을 그렇지 않아 보이게 만들 수 있다.
23 특별성은 사랑의 선물 위에 찍힌 배반의 인장이다. 특별성의 목적을 섬기는 모든 것은 죽이기 위해 쓰일 수밖에 없다. 특별성의 인장이 찍힌 선물 중에 단 하나도 주는 자와 받는 자 모두를 배반하지 않는 것이 없다. 특별성이 덮어 가린 눈으로 단 한 번 바라보기만 해도, 죽음을 목격하지 않을 수 없다. 특별성의 능력을 믿는 자들 중에 단 한 명도, 죄를 사랑의 대체물로 확립하여 충직하게 섬길 흥정과 타협을 추구하지 않는 자가 없다. 또한 특별성의 목적을 소중히 여기는 관계들 중에 단 하나도, 안전의 무기요 사랑의 "위협"에서 모든 환상을 지켜줄 대단한 방어자로서 살인에 매달리지 않는 자가 없다.
24 특별성에 대한 바람은 하느님이 당신의 아들을 당신에게서 떼어놓는 감옥으로 몸을 만드셨다는 것을 가능해 보이게 만든다. 왜냐하면 특별성은 하느님이 들어오실 수 없는 특별한 장소, 너의 작디작은 자아 외에는 아무것도 환영받지 않는 은신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너에게만 바쳐진다. 여기서 너는 모든 형제들과 떨어져 분리되어 있으며, 환상에 침투해 들어오는 모든 제정신으로부터 안전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안전하며, 영원히 계속될 갈등을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 여기에 네가 하느님을 떠나 진리와 구원에서 멀어져서, 너의 특별한 왕국을 광기와 외로움으로 통치하려고 너 자신을 가둬 잠근 지옥문이 있다.
25 하느님은 네가 던져버린 열쇠를 네 형제에게 주셨다. 너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너의 계획 대신에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네 형제의 거룩한 손이 그 열쇠를 건네줄 것이다. 너의 모든 불행을 바라보고는, 너의 계획은 이미 실패했으며, 그 어떤 평화나 기쁨도 가져다줄 수 없음을 깨닫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럴 준비를 마치겠는가? 너는 지금 이러한 절망을 뚫고 나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절망이라는 환상일 뿐이다. 특별성의 죽음은 너의 죽음이 아니라, 네가 영원한 생명으로 깨어나는 것이다. 너는 단지 너의 정체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하느님이 창조하신 대로의 너 자신을 받아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