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혼란의 "법칙"을 결코 이해할 수는 없어도, 빛으로 가져갈 수는 있다. 혼란의 법칙은 의미가 없으며, 따라서 이성의 영역 바깥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성과 진리를 가로막는 장애물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혼란의 법칙을 차분하게 바라보자.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 너머를 보고, 그것이 주장하는 바가 아니라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법칙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것의 목적은 진리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네가 만든 세상을 좌우하는 법칙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지배하지 않으며, 따라서 깰 필요가 없다. 그 법칙을 단지 바라보기만 하면, 그 너머로 가게 된다.
20 첫 번째 혼란의 법칙은, 진리는 각자에게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원리들처럼 이 법칙도, 각 사람은 분리되어 있고, 그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떼어놓는 다른 사고체계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이 원리는 환상에 위계가 있다는 믿음, 즉 어떤 환상은 더 가치가 있으며, 따라서 참이라는 믿음에서 도출된다. 각자는 스스로 이것을 확립하며, 다른 사람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공격함으로써 그 믿음을 참인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것은 정당화된다. 왜냐하면 그 가치들이 다르고, 그 가치들을 지닌 자들이 같지 않아 보이며, 따라서 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1 이것이 기적의 첫 번째 원리를 어떻게 방해하는 듯이 보이는지 생각해 보라. 이것은 환상들 사이에 진리의 등급을 확립하여, 어떤 환상은 다른 환상보다 더 극복하기 어려워 보이게 만든다. 네가 만약 환상들은 모두 똑같고, 똑같이 참이 아님을 깨닫는다면, 기적이 모든 환상에 적용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잘못들이 그 종류와 상관없이 교정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들이 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못들을 서로에게 가져가는 대신에 진리로 가져오면, 그것들은 그저 사라진다. 무의 어떤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진리에 더 잘 저항할 수는 없다.
22 죄를 숭배하는 자라면 누구나 소중히 여기는 두 번째 혼란의 법칙은, 각 사람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공격받고 죽어 마땅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혼란의 법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 원리는, 잘못에는 교정이 아닌 처벌이 가해져야 한다는 요구다. 잘못을 범하는 자를 파괴하면, 그는 교정도 용서도 불가능한 자가 된다. 그러므로 그의 행위는 그 자신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판결로 해석되며, 하느님조차 그것을 뒤집을 힘이 없으시다. 죄라는 것은 하느님의 아들이 그 자신의 파괴를 불가피하게 만드는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기에,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23 이것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은지 생각해 보라. 이제 그들은 결코 다시 하나가 될 수 없는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한쪽은 항상 다른 한쪽에 의해 정죄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은 정녕 다르며, 서로에게 적이다. 이제 그들의 관계는 적대 관계다. 그것은 마치 아들의 분리된 측면들이 결합이 아닌 갈등을 위해 만나는 것과도 같다. 한쪽은 약해지고, 다른 한쪽은 그의 패배 덕분에 강해진다. 이제 그들이 하느님과 서로를 두려워하는 것은 이치에 맞는 것 같고, 그러한 두려움은 하느님의 아들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창조주께 행한 것 때문에 실재화된다. 혼란의 법칙을 떠받치는 오만이 이보다 더 뚜렷이 드러날 수는 없을 것이다.
24 여기에 실재의 창조주가 무엇이며, 그분이 무엇을 생각하고 믿어야 하는지, 또 그것을 믿는다면 그분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정의하려는 원리가 하나 있다. 심지어 그분이 믿으라고 정해진 것이 과연 진리인지 그분께 물을 필요도 없어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아들이 그분께 말해줄 수 있으며, 그분은 단지 아들의 말을 믿을지 아니면 잘못 생각할지 선택할 수만 있다. 이것은 혼란을 영속화하는 듯한 세 번째의 황당한 믿음으로 곧장 이어진다. 만약 하느님이 잘못 생각하실 수 없다면,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이 자신의 정체에 대해 가진 믿음을 받아들이시고, 그것 때문에 아들을 증오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25 이 세 번째 원리에 의해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 어떻게 강화되는지 보라. 이제 비참함 속에서 하느님께 돌아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제 하느님은 그 비참함을 야기한 "적"이 되어버리셨으므로, 그분께 간청해 봤자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원은 아들 안에 있을 수 없다. 그의 모든 측면들은 하느님과 전쟁 중에 있으며, 그들의 공격은 정당한 근거가 있는 것 같다. 이제 갈등이 불가피해졌고, 하느님도 도우실 수 없다. 이제 구원은 불가능하게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구원자가 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26 해방도 탈출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속죄는 신화가 되어버리고, 용서가 아닌 복수가 하느님의 뜻이다. 이 모든 것이 시작된 곳에서 바라본다면,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도움은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파괴만이 그 결과일 수 있다. 게다가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을 이기려고 파괴의 편에 서계신 것 같다. 에고가 너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것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찾게 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이 수업의 기능이다. 이 수업은 에고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다.
27 에고는 자신이 빼앗는 것만 가치 있게 여긴다. 이것은 혼란의 네 번째 법칙으로 이어진다. 네가 만약 다른 법칙들을 받아들인다면, 이 법칙도 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그럴듯한 법칙은, 너는 네가 빼앗은 것을 갖는다는 믿음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손실은 너의 이익이 된다. 따라서 네가 이 법칙을 따른다면, 너는 결코 너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로부터도 빼앗을 수 없음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다른 모든 법칙은 이 법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적들은 서로에게 기꺼이 주지 않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공유하려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의 적들이 너에게 주지 않으려고 하는 그것은, 그들이 그것을 너에게 감춘다는 이유만으로도 분명 소유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28 광기의 그 모든 장치들이 여기에 드러나 보인다: 당연히 네 것이어야 하는 값진 유산을 감춰서 강력해진 "적", 주어지지 않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너의 정당한 입장과 공격, 그리고 너 자신을 구하기 위해 적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손실. 죄 있는 자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적의 파렴치한 행위가 그들을 이렇게 치사한 공격으로 몰아붙이지 않았다면, 그들은 친절하게만 반응했으리라. 그러나 이렇게 야만적인 세상에서 친절한 자들은 살아남을 수 없으며, 따라서 빼앗거나 빼앗길 수밖에 없다.
29 그리고 이제 아직 "설명되지" 않은 모호한 질문 하나가 답해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 이 가장 기만적이고 교활한 적으로부터 정당한 분노로 빼앗아 와야 하는 이 귀중한 것, 이 값을 매길 수 없는 진주, 이 감춰진 은밀한 보물은 무엇인가? 그것은 네가 원하지만 결코 찾을 수 없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이제 너는 그것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를 "이해한다." 이 적이 그것을 네게서 빼앗아 네가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을 곳에 감춰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몸에 감췄으며, 이제 그의 몸은 그의 죄의식을 가리는 덮개, 본래 너에게 속한 것을 감추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이제 네가 본래 너에게 속한 것을 가지려면 그의 몸이 파괴되고 희생되어야 한다. 그는 배신했기에 죽어야 하며, 그래야 네가 살 수 있다. 그리고 너는 단지 정당 방어로서 공격한다.
30 그러나 그가 죽어야만 네가 얻을 수 있는 것, 네가 원하는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지 못하는 한, 너의 살인적인 공격에 정당한 근거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여기서 혼란의 마지막 법칙이 구원하러 온다. 그것은 사랑에 대체품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너의 모든 고통을 치료할 "마법"이며, 너의 광기에서 누락된 요소로서 그것을 "제정신"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네가 공격해야 하는 까닭이다. 바로 여기에, 너의 복수를 정당화하는 것이 있다. 정체를 드러낸 에고의 비밀 선물을 보라. 그것은 네 형제의 몸에서 찢어낸 것으로서, 그 선물이 본래 속한 자에 대한 악의와 증오 속에서 그곳에 감춰진 것이다. 그는 너의 삶에 의미를 줄 비밀 성분을 앗아가려 한다. 서로에 대한 적의에서 탄생한 이 사랑의 대체품은 분명 구원일 것이다. 그것에는 대체품이 없으며, 단지 이 하나만 있다. 네가 맺는 모든 관계의 목적은 단지 그것을 강탈해 네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31 너의 소유권은 결코 완전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네 형제는 네가 훔쳐간 것 때문에 너를 끊임없이 공격할 것이다. 하느님도 두 사람에 대한 복수를 끝내지 않을 것이다. 미쳐버린 하느님은 이 사랑의 대체품을 가져야만 하고, 따라서 너희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단단한 땅에 두 발을 딛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세상을 제정신으로 걸어 다닌다고 믿지만, 다음을 고려해 보라: [이것이 바로, 너의 "제정신"이 근거하는 듯한 법칙들이다.] 이것이 바로, 너의 발아래에 있는 땅을 단단해 보이게 만드는 원리들이다. 그리고 바로 이곳이야말로, 네가 의미를 찾는 곳이다. 이것은 네가 너의 구원을 위해 만든 법칙들이다. 그 법칙들은 네가 선호하는 천국의 대체품을 유지해 준다. 이것이 바로 그 법칙들의 목적이며, 그 법칙들은 바로 이것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 법칙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뻔하다. 광기의 수단은 분명 제정신이 아니다. 너도 그 목표가 광기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있는가?
32 그 누구도 광기를 원하지 않으며, 이것이 광기의 정체임을 본 자라면 그 누구도 자신의 광기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광기를 보호하는 것은 바로 광기가 참이라는 믿음이다. 진리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야말로 정신 이상의 기능이다. 정신 이상을 믿기 위해서는 그것을 진리라고 보아야 한다. 정신 이상이 진리라면, 정신 이상의 반대로서 전에 진리였던 것이 이제는 광기가 되어야 한다. 광기를 제정신으로, 환상을 진리로, 공격을 친절로, 증오를 사랑으로, 살인을 축복으로 완전히 뒤집는 이러한 역전이야말로 혼란의 법칙들이 섬기는 목표다. 이러한 수단들로 인해, 하느님의 법칙은 완전히 역전되어 보인다. 여기서 죄의 법칙이 사랑을 포로로 잡아두고, 반면에 죄는 풀어주는 듯이 보인다.
33 그러나 이런 것들은 혼란의 목표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엄청난 역전으로 인해 질서의 법칙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혼란은 무법 상태로서, 그 안에는 어떤 법칙도 없다. 혼란을 믿기 위해서는 혼란의 그럴듯한 법칙들을 실제라고 지각해야 한다. 그 법칙들의 목표인 광기를 제정신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잿빛 입술과 보지 못하는 눈을 가진, 바라보기에도 끔찍한 두려움이 사랑의 왕좌에 등극한다. 그것은 사랑의 죽어가는 정복자, 사랑의 대체품, 구원으로부터의 구원자다. 두려움의 법칙들이야말로 죽음을 얼마나 사랑스러워 보이게 만드는지! 사랑의 왕좌에 앉은 영웅에게 감사하라! 그는 두려움과 죽음을 위해 하느님의 아들을 구했다!
34 하지만, 도대체 이러한 법칙들을 어떻게 믿게 되는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상한 장치가 있다. 그 장치는 낯설지도 않다. 우리는 전에 그 장치가 어떻게 해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는지 여러 번 살펴보았다. 그 장치는 진리 안에서는 기능하지 않지만, 그림자만이 주된 역할을 하는 꿈속에서는 아주 강력해 보인다. 형식의 강조와 내용의 무시가 없다면, 어떤 혼란의 법칙도 믿음을 강요할 수 없다. 그 법칙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참이라고 여기는 자는 그것이 주장하는 내용을 보지 않는다. 그것이 취하는 형식 중에 어떤 것은 의미 있어 보이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35 어떻게 특정 형식의 살인이 죽음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과연 어떤 형식의 공격이 사랑일 수 있는가? 과연 어떤 형식의 정죄가 축복인가? 그 누가 자신의 구원자를 무력하게 만들면서 구원을 발견하는가? 그에 대한 공격의 형식이 너를 속이도록 허용하지 말라. 너는 그를 해치려고 하면서도 구원될 수는 없다. 그 누가 자기 자신을 공격함으로써 공격으로부터의 안전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이런 광기가 무슨 형식을 취하는지가 어떻게 중요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자신이 구하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대상을 정죄함으로써 스스로를 무효화하는 판단이다. 광기가 네 눈에 사랑스러워 보이는 형식을 취하더라도 속지 말라. 너의 파괴에 골몰하는 것은 너의 친구가 아니다.
36 너는 이런 무분별한 법칙들을 믿지도 않고 그에 따라 행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그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네가 그 법칙들이 말하는 내용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그것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형제들이여, 너희는 정녕 그 법칙들을 믿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내용을 가진 법칙들이 취하는 형식을 너희가 달리 어떻게 지각할 수 있겠는가? 그중 어떤 형식이라도 과연 지지할 수 있는 것인가? 하지만 너희는 그 법칙들을 그것들이 취하는 형식 때문에 믿으며, 그 내용은 알아보지 못한다. 그 내용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해골에 장밋빛 입술을 그리고, 멋진 옷을 입히고, 어루만지고 애지중지한다고 해서 해골을 살려낼 수 있겠는가? 그리고 너는 네가 살아있다는 환상에 만족할 수 있겠는가?
37 천국 바깥에는 생명이 없다. 생명은 분명 하느님이 생명을 창조하신 바로 그곳에 있을 것이다. 천국과 떨어진 어떤 상태에서도 생명은 환상이다. 그것은 잘해봤자 생명처럼 보이고, 최악의 경우 죽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둘은 모두 생명이 아닌 것에 대한 판단으로서, 부정확하고 의미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똑같다. 천국에 없는 생명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천국에 있지 않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천국 바깥에는 환상들의 갈등만 있다. 그러한 갈등은 무분별하고 불가능하고 모든 이성 너머에 있지만, 천국을 가로막는 영원한 장애물이라고 지각된다. 환상들은 단지 형식들일 뿐이다. 그 내용은 결코 참이 아니다.
38 혼란의 법칙은 모든 환상을 지배한다. 환상의 형식들은 갈등하며, 그럼으로써 어떤 환상에 다른 환상들보다 더 높은 가치를 두는 것이 가능해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각 형식은, 다른 형식들과 마찬가지로 확실하게, 혼란의 법칙이 질서의 법칙이라는 믿음에 의존한다. 각 형식은 혼란의 법칙을 철저히 떠받치며, 그것이 참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제공한다. 공격의 형식이 겉보기에 더 부드러워 보인다고 해서 그것의 증언이나 결과가 덜 확실한 것은 아니다. 환상은 그 형식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함축하는 믿음 때문에 두려움을 불러올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믿음의 결핍은, 그것이 어떤 형식을 취하든 상관없이, 혼란을 실재라고 증언한다.
39 죄에 대한 믿음에서는 혼란에 대한 믿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논리적인 귀결, 질서정연한 생각의 타당한 단계로 보이기 때문이다. 혼란에 이르는 단계들은 실로 출발점으로부터 깔끔하게 도출된다. 각 단계는 진리의 역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형식으로서, 진리에서 멀어져 한층 더 깊은 공포로 이어진다. 한 단계가 다른 단계보다 더 작다고 생각하지 말고, 어느 한 단계에서 돌아오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하지도 말라. 각 단계에 천국으로부터의 하강 전체가 놓여있다. 그리고 너의 생각은 그것이 시작된 바로 그곳에서 끝나야 한다.
40 형제들이여, 지옥으로 하강하는 과정에서 단 한 단계도 취하지 말라. 네가 만약 한 단계라도 취한다면, 나머지 단계들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단계들은 반드시 뒤따라올 것이다. 어떤 형식으로 공격을 하든, 너는 이미 천국에서 멀어지는 비틀린 계단에 발을 올려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이 모든 것을 무효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네가 선택한 것이 천국으로 가는 계단인지 지옥으로 가는 길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것은 아주 쉽다. 너는 어떻게 느끼는가? 너는 평화를 자각하는가? 네가 어떤 길을 가는지 확신하는가? 천국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너는 혼자 걷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의 친구에게 너와 함께 걸어가면서 목표점에 대한 확신을 달라고 요청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