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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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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21장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20분

제21장 내면의 그림

Ⅷ. 지각과 소망

70 너의 모든 불행은 너에게 권능이 없다는 이상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너는 이것을 보지 못하는가? 무력한 상태는 죄의 대가다. 무력함은 죄의 조건으로서, 죄를 믿기 위해 요구되는 유일한 필요조건이다. 오로지 무력한 자들만이 죄의 존재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극악무도함은 오로지 왜소한 자들에게만 호소력이 있다. 자신이 왜소하다고 먼저 믿어버린 자들만이 거기서 매력을 느낀다.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배반은 자신을 그와 동일시하지 않는 자들의 방어수단이다. 그리고 너는 하느님의 아들과 한편이거나 반대편이다. 너는 그를 사랑하거나 공격하며, 그의 단일성을 보호하거나 그가 너의 공격으로 산산이 흩어지고 살해되었다고 본다.

71 그 누구도 하느님의 아들에게 권능이 없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을 무력하다고 보는 자들은 분명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그들이 과연 하느님 아들의 적이 아닌 무엇이 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들이 하느님 아들의 권능을 질투하고, 그 질투 때문에 스스로 그 권능을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것 외에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어둠 속에 있는 자들로서, 말이 없고 겁에 질려 있으며, 혼자 떨어져 있으면서 소통하지 않고, 하느님 아들의 권능이 자신을 쳐서 죽일까 봐 두려움에 떨면서 그에 맞서 자신의 무력함을 들어올린다. 그들은 무력한 자들의 군대에 들어가서, 하느님의 아들을 상대로 복수와 비통함, 원한에 사무친 전쟁을 일으켜서 그를 자신과 똑같게 만들려고 한다. 자신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과 하나임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누구를 증오하는지 모른다. 그들은 과연 안쓰러운 군대다. 그들 각자는 공동의 대의 아래 있다고 생각했음을 기억할 수 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언제든 자신의 형제나 자기 자신을 공격할 수도 있다.

72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은 미쳐 날뛰고 요란스러우며 강력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적을 증오한다는 사실 외에는 그 적에 대해 전혀 모른다. 그들은 증오로 모였지만, 서로 결합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결합했다면, 증오는 불가능했으리라. 무력한 자들의 군대는 힘 앞에서 해체될 수밖에 없다. 강한 자들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그들은 권능을 꿈꾸거나 그 꿈을 실행에 옮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군대가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제멋대로일 것이다. 그 군대는 아무것이나 집어 들어 대상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듯이 보일 수 있다. 꿈속에는 이성이 없다. 꽃이 독화살로 바뀌고, 아이가 거인이 되며, 쥐가 사자처럼 포효한다. 그리고 사랑도 아주 쉽게 증오로 변한다. 이것은 군대가 아니라, 정신 병원이다. 계획된 공격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난장판에 불과하다.

73 무력한 자들의 군대는 정녕 약하다. 그것은 무기도 없고 적도 없다. 물론 그 군대는 세상을 쳐부수고 적을 찾으러 다닐 수 있다. 하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발견할 수는 없다. 물론 적을 발견했다고 꿈꿀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 군대가 공격하는 중에도 바뀔 것이다. 따라서 그 군대는 당장 다른 적을 찾으러 달려가며, 결코 승리에 안주하지 않는다. 이렇게 달리는 동안, 그 군대는 무언가 다른 것으로 변하여 자신의 살인적인 공격을 항상 교묘히 빠져나가는 대단한 적을 얼핏 보았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공격하려고 돌아선다. 너무나 잘도 변해서 알아볼 수조차 없는 이 적이야말로 얼마나 기만적인지!

74 하지만 증오에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적이 없다면, 죄에 대한 신앙도 있을 수 없다. 죄를 믿고도 감히 자신에게 적이 없다고 믿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가 과연, 그 누구도 자신을 무력하게 만들지 않았다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이성은 분명 그에게, 찾을 수 없는 것을 더 이상 구하지 말라고 일러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먼저 적이 없는 세상을 지각할 용의를 내야 한다. 그가 어떻게 그런 세상을 볼 수 있는지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는 이해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는 단지 자신의 무력함만 강조하고, 죄로 하여금 그의 적은 분명 그 자신이라고 말해주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다음의 몇 가지 질문만 자기 자신에게 제기하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이 자신을 위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

75 나는 나를 지배하는 세상 대신에 내가 지배하는 세상을 열망하는가?

나는 내가 무력하지 않고 강력한 세상을 열망하는가?

나는 나에게 적이 없고 내가 죄지을 수 없는 세상을 열망하는가?

그리고 나는 내가 부정했던 것을, 그것이 진리기 때문에 보기를 원하는가?

76 너는 처음의 세 질문에는 이미 답했지만, 마지막 질문에는 아직 답하지 않았다. 너는 이 질문을 여전히 두려워하고, 다른 질문들과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은 너에게 이 질문들이 모두 똑같다고 확실히 말해줄 것이다. 우리는 올해 정말로 똑같은 것들은 똑같음을 강조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마지막 질문은 실로 네가 결정할 필요가 있는 마지막 것으로서, 다른 질문들에서는 사라진 너에 대한 위협이 여전히 담겨있는 듯이 보인다. 이 상상 속의 차이는, 진리가 어쩌면 네가 머지않아 찾아낼 적일 수도 있다는 너의 믿음을 입증한다. 그렇다면 이곳에 죄를 발견하고 권능을 받아들이지 않을 마지막 희망이 남아있는 듯이 보인다.

77 진리와 죄, 권능과 무력함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은 공격할지 치유할지 선택하는 것이다. 이를 잊지 말라. 치유는 권능에서 나오고, 공격은 무력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너는 네가 공격하는 자를 치유하기를 원할 수 없다. 그리고 네가 치유되기를 원하는 자는 분명 네가 공격에서 보호받도록 선택한 자일 것이다. 이 결정이야말로 그를 몸의 눈을 통해 볼지, 아니면 비전을 통해 그가 드러나도록 할지 선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결정이 어떻게 그에 따른 결과로 이어질지는 너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네가 무엇을 보기를 원하는지는 분명 너의 선택일 것이다. 이 수업은 원인에 대한 수업이지 결과에 대한 수업이 아니다.

78 네가 아직 답하지 않고 남겨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잘 생각해 보라. 그리고 너의 이성으로 하여금 그것은 반드시 답해져야 하고, 다른 세 가지 질문에서 정녕 답해졌음을 말해주게 하라. 그러면 네가 죄의 결과를 어떤 형식으로 보든, 단지 다음과 같이 자문하기만 하면 됨을 분명히 깨달을 것이다:

79 이것이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인가? 나는 이것을 원하는가?

80 이것이 바로 너의 유일한 결정이다. 이것은 또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결정하는 조건이다. 이 질문은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와는 무관하지만, 그 일이 왜 일어나는지와는 무관하지 않다. 너에게는 일어나는 일에 대한 통제권이 있다. 그리고 네가 적이 없는 세상, 너 자신이 무력하지 않은 세상을 보기로 선택한다면, 그 세상을 볼 수단이 너에게 주어질 것이다.

81 마지막 질문이 왜 그리 중요한가? 이성은 너에게 그 이유를 말해줄 것이다. 시간이라는 측면만 제외하면, 그 질문은 다른 세 질문과 똑같다. 나머지 세 질문은 결정했다가 거둬들였다가 다시 결정할 수 있는 결정들이다. 그러나 진리는 불변이며, 이랬다저랬다 할 수 없는 상태를 함축한다. 너는 너를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네가 지배하는 세상을 열망할 수 있으며, 그러한 너의 마음을 바꿀 수도 있다. 너는 무력함을 권능과 맞바꾸겠다고 열망할 수 있으며, 죄의 작은 반짝거림이 너를 유혹할 때 이와 같은 열망을 잃을 수도 있다. 또한 너는 죄 없는 세상을 보기를 원할 수 있으며, 몸의 눈을 사용하고 네가 열망하는 것을 바꾸도록 "적"으로 하여금 너를 유혹하게 할 수도 있다.

82 이 모든 질문은 내용 면에서 정녕 똑같다. 각각의 질문은 너에게 죄의 세상을 성령이 보는 세상과 맞바꿀 용의가 있는지 묻는다. 성령이 보는 세상이야말로 죄의 세상이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를 바라보는 자들은 실재세상에 대한 부정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질문은 실재세상을 보겠다는 너의 열망에 불변성에 대한 소망을 덧붙여서, 그 열망이 너의 유일한 열망이 되게 한다. 마지막 질문에 "예"라고 대답함으로써, 너는 나머지 모든 질문에 이미 내렸던 결정에 진실성을 더하는 것이다. 그제야 너는 비로소 너의 마음을 다시 바꿀 수 있는 선택권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이 선택권을 원하지 않을 때, 나머지 질문들도 정녕 온전히 답해진 것이다.

83 너는 왜 네가 나머지 질문에 이미 답했음을 확신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미 답했다면, 그 질문들을 그렇게 자주 제기하는 것이 과연 필요하겠는가? 마지막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그에 대한 답은 "예"기도 하고 "아니오"기도 하다. 그때 너는 "예"는 "아니오가 아님"을 의미할 수밖에 없음을 지각하지 않은 채 "예"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행복을 해치는 결정을 내리지 않지만,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음을 보지 못한다면 과연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만약 자신의 행복은 늘 변하는 것이고, 지금은 이것이었다가 다음엔 저것이었다가 결국에는 어디에도 붙어있지 못하고 교묘히 빠져나가는 그림자라고 본다면, 정녕 자신의 행복을 해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84 교묘히 빠져나가는 행복, 혹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행복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환상이다. 행복은 분명 변함없는 것이다. 행복은 변하는 것에 대한 소망을 포기함으로써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쁨은 변함없는 비전을 통하지 않고서는 지각될 수 없다. 그리고 변함없는 비전은 불변성을 소망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질 수 있다. 하느님 아들의 열망이 가진 권능은 자신을 무력하다고 보는 자가 틀렸다는 증거로 남아있다. 네가 뜻하는 것을 열망하라. 그러면 너는 반드시 그것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실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떤 생각에도 해방하거나 죽일 수 있는 권능이 없지 않다. 그리고 어떤 생각도 생각하는 자의 마음을 떠날 수 없으며,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도 없다.

제21장 내면의 그림 - Ⅶ. 이성과 교정제21장 내면의 그림 - Ⅸ. 내면의 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