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지각은 네가 보는 세상을 선택하고 만든다. 지각은 문자 그대로, 마음이 지시하는 대로 그 세상을 골라낸다. 다른 것들이 같다면, 아마도 크기와 모양과 밝기의 법칙이 적용될 것이다. 그러나 그 다른 것들은 같지 않다. 왜냐하면, 너는 간과하려는 것보다는 구하는 것을 발견할 공산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대변하는 음성의 작고 고요한 소리는, 네가 그것을 듣기를 원한다면, 에고의 시끄러운 비명과 의미 없는 헛소리에 파묻히지 않는다. 지각은 사실이 아닌 선택이다. 그러나 바로 이 선택에, 네가 이제껏 깨달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의존한다. 네가 듣기로 선택한 음성과 보기로 선택한 모습에 너의 정체에 대한 믿음이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지각은 이 믿음에 대한 증인일 뿐, 결코 실재에 대한 증인이 아니다. 하지만 지각은 너에게, 실재에 대한 자각이 가능한 조건, 혹은 그것이 불가능한 조건을 보여줄 수 있다.
50 실재는 그 자체가 되기 위하여 너의 협력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실재에 대한 자각은 너의 선택이며, 따라서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에고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에고가 지시하는 것을 본다면, 너는 분명 너 자신이 작디작고 취약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볼 것이다. 너는 또한 우울함과 무가치하다는 느낌, 무상함과 비실재감을 경험할 것이다. 너는 네가, 너 자신의 통제권 훨씬 너머에 있고 너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의 무력한 먹잇감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리고 네가 만든 세상이 너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너의 신앙은 이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의 신앙이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실재를 만든다고는 결코 믿지 말라.
51 너의 자유가 놓여있는 다른 비전과 다른 음성이 있어서, 너의 선택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네가 그 비전과 음성을 신앙한다면, 네 안에서 다른 자아를 지각할 것이다. 이 다른 자아는 기적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본다. 마치 몸에게 호흡이 자연스럽듯, 그 자아에게 기적은 단순하고 자연스럽다. 기적은 도움을 구하는 요청에 대한 분명한 반응이며, 그 자아의 유일한 반응이다. 에고에게는 기적이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에고는 분리된 마음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분리된 마음들은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마음들은 정녕 분리되어 있을 수 없다. 그 자아는 이것을 완벽하게 알아차리고 있다. 따라서 그 자아는, 기적이 다른 마음이 아닌 그 자신의 마음에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식한다. [기적은 언제나 너의 마음을 바꾼다.] 다른 마음이란 정녕 없다.
52 너는 분리라는 아이디어가 이성을 얼마나 방해했는지 깨닫지 못한다. 이성은 네가 너의 의식에서 차단한 그 다른 자아에 놓여있다. 그리고 네가 의식에 남아있도록 허락한 것은 그 무엇도 이성의 능력이 없다. 이성이 결여된 마음 조각이 어떻게 이성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으며, 이성이 주는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겠는가? 온갖 질문이 마음에서 일어날 수 있지만, 만약 근본적인 질문이 이성에서 비롯된다면, 마음은 그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성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질문은 명백하고 단순하지만, 제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그러나 이성이 그것에 답할 수 없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라.
53 너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은 너의 뜻과 동의 없이는 확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계획은 분명 하느님의 아들에 의해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하느님이 당신의 아들을 위해 뜻하시는 것을, 그는 분명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과 무관하게 뜻하지 않으시며, 하느님의 뜻은 성취되기 위해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과 결합한 것이 분명 지금 네 안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너는 분명 성령이 머물러 살 수 있고 성령이 있는 어떤 장소를 따로 마련해 두었을 것이다. 성령은 분명 그에 대한 필요가 일어나서 똑같은 순간에 충족된 이후로 그곳에 존재해 왔을 것이다. 네가 만약 귀 기울인다면, 너의 이성은 이러한 것에 대해 말해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확실히 에고의 "논리"가 아니다. 그 장소가 에고에게 이질적이라는 특성은 네가 에고의 논리에서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증거다. 하지만 그것이 분명 그러하다면, 그것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너를 위해 존재하고 너의 자유를 자신의 목적으로 부여받았다면, 너는 분명 그것을 자유로이 발견할 것이다.
54 하느님의 계획은 단순하다. 그것은 결코 순환적이지 않으며, 결코 자기 패배적이지도 않다. 하느님께는 자아의 확장- 외에 다른 생각들은 없다. 그리고 이 안에 너의 뜻도 분명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공유하는 너의 한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분명히 있는 것이 과연 있느냐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분명히 있는 것을 네가 왜 알아차리지 못하는지 묻는 것은 의미가 있다. 너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완전하려면, 이에 대한 답이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계획은 분명 완전할 것이다. 그것의 근원은 완전하지 않음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근원이 아니라면 과연 어디에 그에 대한 답이 있겠는가? 그리고 네가 과연 이와 같은 답이 있는 곳이 아닌 어디에 있겠는가? 따라서 그 답과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근원의 진정한 결과인 너의 정체는, 분명 그 근원과 함께 있으면서 그 근원과 같을 것이다.
55 오! 그렇다. 너는 이것을 알며, 그 이상 많이 안다. 하지만 앎의 어떤 부분이든, 앎 전체만큼이나 해리를 위협한다. 그리고 앎의 어떤 부분이 오든, 앎 전체가 반드시 함께 올 것이다. 여기에, 네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너는 이성이 가리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성을 위한 증인들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자들만이 그것을 무시할 수 있겠지만, 너는 이미 그 상태를 지났다. 이성은 그 자체로 성령의 목적에 기여하는 수단이다. 이성은 다른 것들처럼 죄라는 목표로부터 재해석되어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성은 에고가 사용하는 수단의 범위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56 신앙과 지각과 믿음은 잘못된 곳에 부여될 수 있으며, 진리를 섬길 뿐만 아니라 대단한 사기꾼의 필요도 섬길 수 있다. 하지만 이성은 광기 안에 전혀 있을 자리가 없으며, 광기의 목적에 맞춰 조정될 수도 없다. 신앙과 믿음은 광기 속에서 강력하므로, 지각을 이끌어 마음이 가치를 둔 곳을 향하게 한다. 그러나 이성은 결코 광기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만약 이성이 지각에 적용된다면, 지각은 즉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 이상 안에는 이성이 전혀 없다. 정신 이상은 전적으로 이성의 부재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에고는 결코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다. 에고는 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정신 이상인 자들은 이성에 접근할 수 있으며, 오로지 그들만이 이성을 필요로 한다. 앎은 이성에 의존하지 않으며, 광기는 이성을 차단한다.
57 이성이 놓여있는 마음 부분은, 아버지의 뜻과 결합된 너의 뜻에 의해 정신 이상의 무효화에 바쳐졌다. 여기에서, 성령의 목적이 받아들여짐과 동시에 성취되었다. 이성은 정신 이상에 이질적인 것이며, 이성을 사용하는 자들은 죄에 적용될 수 없는 수단을 얻은 것이다. 앎은 모든 종류의 성취 저 너머에 있다. 그러나 이성은 네가 앎을 차단하려고 걸어 잠근 문을 열도록 도울 수 있다.
58 너는 이것에 아주 가까이 왔다. 신앙과 믿음이 그 대상을 바꿨고, 너는 에고가 결코 제기하지 않을 질문을 제기했다. 지금 너의 이성은, 그 질문이 네가 알지는 못하지만 너에게 속하는 어떤 것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말해주지 않는가? 이성이 받쳐주는 신앙과 믿음은 변화된 지각으로 이끌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변화 속에서, 비전에게 길을 열어줄 여지가 생긴다. 비전이 섬기는 목적과 그것의 성취를 위한 그 모든 수단들처럼, 비전은 그 자체 너머로 확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