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눈먼 자들이 "보는" 세상은 상상된 것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세상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원히 간접적인 증거를 통해 무엇이 보일 수 있는 것인지 추측해야 하며, 알아차리지 못한 것 때문에 걸려 넘어지면서, 혹은 닫혔다고 생각한 열린 출입구를 부딪치지 않고 통과하면서, 자신의 추론을 재구성해야 한다. 그것은 너도 마찬가지다. 너는 보지 못한다. 네가 추론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서는 틀렸다. 따라서 너는 알아차리지 못한 돌에는 걸려 넘어지면서도, 닫혀있다고 생각한 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은 자각하지 못한다. 그 문은 너의 보지 않는 눈앞에 열려있으면서 너를 맞이하려고 기다리고 있건만....
4 보일 수 있는 것을 보는 대신에 판단하려는 시도는 얼마나 어리석은지!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세상을 그 정체대로 인식하려면, 먼저 세상을 보아야 한다. 너는 어떤 문이 열려있는지 볼 수 있고, 어디가 안전한지, 어떤 길이 어둠으로 인도하고 어떤 길이 빛으로 인도하는지 볼 수 있다. 판단은 너에게 항상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겠지만, 비전은 너에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보여준다. 그런데 네가 왜 추측해야 하겠는가?
5 고통을 통해 배울 필요는 없다. 그리고 온유한 레슨은 즐거이 습득되고 기쁘게 기억된다. 너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것을, 너는 배우기를 원하며 잊기를 원하지 않는다. 네가 부정하려는 것은 이것이 아니다. 너의 질문은, 이 수업을 배우기 위한 수단이 과연 수업이 약속하는 기쁨을 가져다줄 것인지 여부다.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 수업을 배우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네가 아직 행복한 학습자가 아닌 이유는, 비전이 판단보다 더 많이 준다는 것을 아직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는 둘 다 가질 수는 없음을 배웠다.
6 눈먼 자들은 자신을 자신의 세상에 맞춰 조정함으로써 그 세상에 익숙해진다. 그들은 그 안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세상을 즐거운 레슨을 통해 배우지 않고, 자신이 극복할 수 없다고 믿은 한계의 가혹한 필요성을 통해 배웠다. 그들은 여전히 이것을 믿기에, 그러한 레슨을 소중히 여기면서 매달린다. 왜냐하면, 그들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러한 레슨이 자신을 계속 눈멀게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보도록" 배운 세상을 자신의 상상 속에 간직하면서, 그것밖에는 선택할 것이 없다고 믿는다. 그들은 고통을 통해 배운 세상을 증오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 세상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그들이 불완전하고 지독하게 궁핍함을 상기시킬 뿐이다.
7 이렇게 그들은 자신의 삶과 자신이 사는 곳을 정의하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대로 그에 맞춰 자신을 조정하며, 자신이 가진 얼마 되지도 않는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 몸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자 형제들이 가진 모든 것으로 보는 이들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서로에게 다가가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또 실패한다. 그들은 외로움에 맞춰 자신을 조정하면서, 몸을 지키는 것이 곧 자신이 가진 얼마 되지도 않는 것을 보존할 길이라고 믿는다. 귀 기울여라. 그리고 우리가 지금 말하려는 것이 기억나는지 한번 생각해 보라.
8 귀 기울여라. 어쩌면 너는 완전히 잊지는 않은 태곳적 상태에 대한 암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희미할 수도 있지만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아서, 마치 오래전에 그 제목을 잊었고 그것을 들은 상황도 기억나지 않는 노래와도 같다. 너에게는 그동안 노래 전체가 남아있지는 않았으며, 어떤 사람이나 장소, 혹은 특정한 대상과도 관련 없는 짧은 멜로디 조각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 작은 부분으로부터, 너는 그 노래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그 노래를 들었던 상황이 얼마나 경이로웠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너와 함께 그 노래를 들었던 이들을 네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기억한다.
9 선율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너는 선율을 간직해 왔으며, 선율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너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기억할 때 너를 울게 할 그 무언가를 부드럽게 일깨워 주는 것으로서 간직해 왔다. 너는 기억할 수 있지만, 그러면 네가 그 이후로 배운 세상을 잃을 것이라고 믿으며 두려워한다. 하지만 너는 네가 배운 세상의 그 무엇도 결코 이것만큼 소중하지 않음을 안다. 귀 기울여라. 그리고 네가 아주 오래전에 알았고, 그 이후로 너 자신에게 소중히 여기라고 가르친 그 어떤 멜로디보다도 더 소중히 여긴 태곳적 노래가 기억나는지 보라.
10 몸 너머에, 태양과 별들 너머에, 황금색 빛줄기가 둥글게 펼쳐져 있다. 그것은 네가 보는 모든 것 너머에 있지만, 왠지 친숙하다. 네가 그것을 바라다보면, 그것은 뻗어나가 거대하고 빛나는 원이 된다. 그 원 전체가 네 눈앞에서 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 원의 테두리가 사라지면서, 그 안에 있는 것은 더 이상 갇혀있지 않다. 그 빛은 팽창함에 따라 모든 것을 뒤덮고, 무한으로 확장하며, 영원히 빛나면서 단절되거나 제한된 곳이 전혀 없다.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한 연속성으로 결합되어 있다. 또한 무언가가 그 원의 바깥에 있을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그 빛이 없는 곳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11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비전이다. 그리고 너는 그를 잘 안다. 여기에, 자신의 아버지를 아는 하느님 아들의 모습이 있다. 여기에, 너의 정체에 대한 기억이 있다. 너의 정체는 이것의 일부며, 그 모든 것을 내면에 지녔고, 모든 것이 네 안에서 결합되어 있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모든 것과 결합되어 있다. 너에게 몸이 아닌 이것을 보여줄 수 있는 비전을 받아들여라. 너는 그 태곳적 노래를 아주 잘 안다. 하느님의 아들이 아직도 아버지께 불러드리고 있는 이 태곳적 [사랑의] 찬가만큼 너에게 소중한 것은 결코 없을 것이다.
12 그리고 이제 눈먼 자들이 볼 수 있다. 그들이 창조주께 경의를 표하여 부르는 바로 그 노래가 그들 자신도 찬미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어낸 맹목 상태는 이 노래에 대한 기억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비전을 바라보고, 자신이 노래로 찬미하는 그가 누구인지 기억할 것이다. 이러한 기억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기적이겠는가? 자신 안에 이러한 기억을 간직하지 않은 자가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한 사람 안에 있는 빛이 모든 사람 안에 있는 빛을 깨워낸다. 서로에게서 그 빛을 볼 때, 너희는 정녕 모든 이를 위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