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너는 무엇을 보겠는가? 죽음에 매력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면 너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겠는가? 아주 간단히 말해, 너는 아버지를 기억할 것이다. 생명의 창조주, 살아있는 모든 것의 근원, 우주와 우주들의 우주, 심지어 그것들 너머에 있는 모든 것의 아버지를 너는 기억할 것이다. 너의 마음에 이런 기억이 떠오를 때, 평화는 여전히 마지막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그 이후로 구원이 완성되고, 하느님의 아들은 완전히 제정신을 되찾는다. 여기에서, 너의 세상이 끝나기 때문이다.
91 네가 극복해야 할 네 번째 장애물이 그리스도의 얼굴 앞에 두터운 장막처럼 걸려있다. 하지만 자신이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다는 기쁨으로 빛나는 그리스도의 얼굴이 그 너머로 떠오르면서, 평화는 그 장막을 가볍게 치우고 달려가 마침내 그리스도와 만나 결합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얼굴을 나환자의 얼굴처럼 보이게 만들고, 그의 얼굴을 영광으로 밝히는 아버지 사랑의 눈부신 빛줄기를 핏줄기처럼 보이게 만드는 이 어두운 장막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때 그 너머의 타오르는 빛을 받아 사라지기 때문이다.
92 이것이 바로 죽음에 대한 믿음이 떠받치고 죽음의 매력이 보호하는 가장 어두운 장막이다. 죽음과 죽음의 통치에 헌신하는 것은 단지, 이 장막을 절대로 걷지 않을 것이며, 이 장막에 가까이 가지도 않고, 심지어 장막이 거기에 있음을 의심하지도 않겠다고, 에고에게 바치는 엄숙한 맹세자 은밀한 약속이다. 이것은 장막 너머에 있는 것이 영원히 가려져 기억되지 않게 하겠다고 에고와 은밀히 맺은 협정이다. 여기에, 연합이 너를 분리 밖으로 불러내도록 절대로 허락하지 않겠다는 너의 약속이 있다.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잊힌 듯한 엄청난 기억 상실증이며, 너의 자아와 너 사이의 균열이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이것은 너의 해리에서 마지막 단계다.
93 죽음에 대한 믿음이 너를 어떻게 "구원하는" 것 같은지 보라. 이 믿음이 사라진다면, 너는 생명 외에 무엇을 두려워할 수 있겠는가? 죽음의 매력이야말로 생명을 추하고, 잔인하고, 포악해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너는 에고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네가 선택한 친구들이다. 너는 그것들과 은밀한 동맹을 맺으면서,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 절대로 사라지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네가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고, 그의 아버지 안에서 그와 결합하는 일이 없도록....
94 평화가 흘러 넘어가야 할 장애물들은 모두 똑같은 방법으로 극복된다. 장애물을 세운 두려움이 그 아래의 사랑에게 굴복하며, 그럼으로써 두려움이 사라진다. 이 장애물도 마찬가지다. 평화를 제거하고 성령을 네게서 몰아내려는 욕구는 네가 성령을 사랑한다는 조용한 인식 앞에서 사라진다. 몸에 대한 예찬은 네가 영의 편에 섬으로써 포기하게 된다. 너는 결코 몸을 사랑할 수 없었던 만큼이나 영을 사랑한다. 죽음의 매력은 사랑의 매력이 소용돌이치며 너를 부를 때 영원히 사라진다. 사랑을 가로막는 각각의 장애물들 너머에서 사랑 자체가 너를 불렀고, 그것들은 그 너머에 있는 것의 강렬한 매력으로 극복되었다. 장애물들은 네가 두려움을 원하기에 거기에 있는 듯했다. 하지만 너는 그 너머에서 들리는 사랑의 음성을 듣고는 응답했으며, 그에 따라 장애물들은 사라졌다.
95 이제 너는 결코 바라보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 앞에 서서 공포에 떨고 있다. 너는 너의 "친구들"에게 한 약속을 기억하면서 눈길을 아래로 떨군다. 죄의 "사랑스러움", 죄의식의 미묘한 매력, 죽음의 "거룩하고" 창백한 이미지, 네가 결코 저버리지 않겠다고 피로 맹세한 에고의 복수에 대한 두려움, 이 모두가 일어나 너에게 눈을 들지 말라고 명한다. 왜냐하면 너는, 네가 그것들을 바라보고 장막이 걷히게 하면 그것들이 영원히 사라질 것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너의 모든 "친구들", 너의 "보호자들", 너의 "집"이 홀연히 사라질 것이다. 지금 기억하는 것 중에 그 무엇도, 너는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96 네가 단지 눈을 들어올리기만 하면 세상이 너를 완전히 저버릴 듯하다. 하지만 일어날 일이라고는 단지, 네가 세상을 영원히 떠나는 것이다. 이것은 너의 뜻을 재확립하는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그것을 바라보라. 그러면 네가 너의 능력 밖의 일들과 통제할 수 없는 힘, 너의 뜻을 거슬러 일어나는 생각들에 휘둘린다고 두 번 다시 믿지 않으리라. 이것을 바라보는 것은 너의 뜻이다. 그 어떤 미친 열망도, 다시 잊으려는 그 어떤 사소한 충동도, 그 어떤 지독한 두려움도, 죽을 것 같아 흘리는 식은땀도 너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 장막 너머에서 너를 끌어당기는 것은 너의 내면 깊숙한 곳에도 있으며, 그것은 장막 너머의 것과 분리되지 않고 완전히 하나기 때문이다.
장막 걷기
97 너희는 함께 이만큼 멀리 왔음을 잊지 말라. 너희를 여기로 데려온 것은 확실히 에고가 아니었다. 평화를 가로막는 그 어떤 장애물도 에고의 도움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에고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너희에게 그것을 바라보고는 그 너머로 가라고 명하지 않는다. 에고는 너희로 하여금 에고의 약함을 바라보고는, 에고가 너희를 진리에서 떼어놓을 힘이 전혀 없음을 배우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너희를 여기로 데려온 안내자가 너희 곁에 남아있다. 그러니 너희가 눈을 들어올린다면, 아무런 두려움 없이 공포를 바라볼 준비가 될 것이다. 단지 먼저 눈을 들어올려 서로를 바라보라. 서로의 환상에 대한 완전한 용서에서 태어나는 순결 속에서, 환상을 보지 않는 믿음의 눈을 통해 보라.
98 속죄를 받아들이고 환상은 실제가 아님을 배우지 않는 한, 그 누구도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공포 없이 바라볼 수 없다. 그 누구도 이 장애물 앞에 홀로 설 수 없다. 그의 형제가 곁에서 함께 걷지 않았다면, 그는 여기에 도달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형제를 진심으로 완전하게 용서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바라볼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잠시 이곳에 서있되, 두려움에 떨지 말라. 너희는 준비될 것이다. 거룩한 순간에 주어진 목적이 너희를 이끌고 온 이곳에서, 우리 함께 거룩한 순간 안에서 결합하자. 그리고 우리를 이곳으로 모아들인 성령이 너희에게 필요한 순결을 제공할 것이며, 너희는 나의 사랑과 성령의 사랑을 위해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믿음 안에서, 우리 함께 결합하자.
99 이것을 너무 빨리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곳은 누구나 준비되었을 때 와야 하는 곳이다. 그가 일단 자신의 형제를 발견하기만 하면, 그는 준비된 것이다. 하지만 단지 이곳에 도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목적 없는 여정은 여전히 무의미하며, 여정이 끝났을 때조차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인다. 여정의 목적이 달성되었음을 깨닫지 않는 한, 여정이 끝났음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이곳, 여정의 종착점이 너희 앞에 있는 이곳에서, 너희는 여정의 목적을 바라본다. 바로 이곳이 너희가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계속 방랑하다가 단지 다시 선택하기 위해 돌아올 것인지 선택하는 곳이다.
100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바라보려면 정녕 준비가 필요하다. 오로지 제정신인 자만이 적나라한 정신 이상과 미쳐 날뛰는 광기를 두려움이 아닌 연민과 동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그것을 공유할 때만 두렵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가 서로를 완벽한 믿음과 사랑과 온유함으로 바라볼 때까지, 너희는 정녕 그것을 공유한다. 완전히 용서하기 전에는, 여전히 용서하지 않은 것이다. 너희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서로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가 용서하지 않는 자들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두려움을 곁에 두고서 사랑에 도달할 수는 없다.
101 네 곁에 서있는 이 형제가 여전히 낯선 자로 보인다. 너는 그를 모르고, 그에 대한 너의 해석은 아주 무시무시하다. 너는 여전히 그를 공격하면서, 너 자신으로 보이는 것이 해를 입지 않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손안에, 너의 구원이 놓여있다. 너는 그의 광기를 보며, 그것을 공유하기 때문에 증오한다. 그리고 그것을 치유할 그 모든 연민과 용서가 두려움에 굴하여 길을 내준다. 형제들이여, 너희는 서로에 대한 용서가 필요하다. 너희는 함께 광기를 공유하거나 천국을 공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는 믿음으로 함께 눈을 들어올리거나, 눈을 전혀 들어올리지 않을 것이다.
102 너희 각자 옆에는 너희에게 속죄의 성배를 주는 자가 있다. 그의 내면에는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다. 너는 그의 죄를 거론하며 비난하려는가, 아니면 그가 주는 선물을 받아들이려는가? 이렇게 구원을 주는 자가 너의 친구인가 적인가? 그가 누구인지 선택하라. 그러면서 너는 그에게서 네가 선택하는 대로 받을 것임을 기억하라. 너의 내면에 그를 용서할 힘이 있듯이, 그의 내면에는 너의 죄를 용서할 힘이 있다. 너희 중 누구도 그 힘을 자기 자신에게만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너희 각자 옆에는 너희의 구원자가 서있다. 그로 하여금 그의 정체가 되게 하고, 사랑을 적으로 만들려고 하지 말라.
103 네 곁에 서있는 너의 친구, 그리스도를 보라. 그는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다운지! 너는 그의 사랑스러움을 감추려고 그에게 죄의 장막을 드리워놓았으며, 따라서 그가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거룩함을 공유하려고 너에게 용서를 내밀고 있다. 이 "적", 이 "낯선 자"가 그리스도의 친구인 너에게 구원을 선사한다. 그리스도의 "적들", 죄의 숭배자들은 자신이 누구를 공격하는지 모른다. 그는 바로 너의 형제로서,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기다린다. 오로지 그만이 너에게 용서를 선사할 수 있거늘, 너는 그에게 용서를 선사하지 않으려 하는가? 하느님이 살아있는 만물을 창조하셔서 사랑하시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그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너에게 너의 구원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구원을 진정으로 줄 것이다. 구원은 주어질 뿐만 아니라 받아들여지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104 너희가 서로에게 선사하고 너희의 가장 거룩한 친구에게 받지 못할 천국의 은혜란 없다. 그가 너에게 구원을 주지 않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 너는 구원을 받음으로써 그에게 구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네가 그에게서 받은 것을 반드시 너에게서 받을 것이다.] 서로에게 줌으로써 받으라고, 구원이 너희에게 주어졌다. 네가 용서하는 자는 자유로우며, 너는 네가 주는 것을 공유한다. 네 형제가 스스로 지었다고 생각하는 죄와 네가 그에게서 본다고 생각하는 모든 죄책을 용서하라.
105 여기에 부활의 거룩한 장소가 있다. 우리는 이곳에 다시 왔으며, 구원이 성취되어 받아들여질 때까지 돌아올 것이다. 네 형제를 정죄하기 전에, 먼저 그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가 거룩한 것에 대해, 거룩함의 선물이 너를 위해 그에게 주어진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려라. 그와 기쁘게 결합하고, 불안하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그의 마음에서 죄의식의 흔적을 모두 제거하라. 네가 그에게 지웠고 그가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무거운 죄의 짐을 그가 벗도록 도와서, 행복하게 웃으면서 가볍게 저멀리 던져버려라. 죄의 짐을 가시처럼 그의 이마에 짓누르지 말고, 그를 거기에 못 박아 구원도 없고 희망도 없게 버려두지 말라.
106 서로에게 믿음을 주어라. 믿음과 희망과 자비는 너희 것으로서, 너희가 주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선물을 주는 손으로, 선물이 주어진다. 네 형제를 바라보고, 그의 내면에서 네가 받고 싶어 하는 하느님의 선물을 보라. 부활의 때인 부활절이 가까이 왔다. 서로에게 구원을 주고, 그것을 공유하자. 그럼으로써 우리는 죽음 안에서 분리되지 않고, 부활 안에서 하나로 일어나게 된다. 내가 너희 둘을 위해 성령께 드린 자유의 선물을 보라. 그리고 너희도 이와 똑같은 선물을 성령께 드려 함께 자유로워져라. 그 선물을 드리면서, 너희가 드린 것에 대한 보답으로 성령께 그것을 받아라. 성령은 우리가 이 거룩한 장소에서 만나 똑같은 결정을 내리도록 너희와 나를 함께 인도한다.
107 내가 너를 해방하였듯이, 이곳에서 네 형제를 해방하라. 그에게 이와 똑같은 선물을 주고, 어떤 정죄의 눈길로도 바라보지 말라. 내가 너를 바라보듯이 그를 죄 없다고 보고, 그가 자신 안에서 본다고 생각하는 죄를 간과하라. 이곳, 고뇌와 죽음이 가득한 듯한 정원에서, 죄로부터의 완전한 해방과 자유를 서로에게 선사하라. 이렇게 우리는 함께 하느님의 아들이 부활로 가는 길을 준비하고, 그로 하여금 다시 일어나 죄도 죽음도 알지 못하고 오로지 영원한 생명만 아시는 아버지를 기쁘게 기억하도록 할 것이다.
108 우리는 함께 장막 너머의 현존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고,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이 세우신 구원 계획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안다. 이것이 바로 여정의 목적이며, 이것 없는 여정은 무의미하다. 여기에, 하느님이 너희에게 영원히 주신 하느님의 평화가 있다. 여기에, 너희가 구하는 안식과 조용함, 애초에 여정을 시작한 이유가 있다. 천국은 너희가 서로에게 빚진 선물이며, 너희가 하느님의 아들에게 건네는 깊은 감사의 표현이다. 그의 정체에 대해,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그의 정체가 되도록 창조하신 것에 대해 감사하여….
109 네가 이런 선물을 주는 자를 어떻게 바라보려 하는지 잘 생각해 보라. 너는 그를 보는 대로 그 선물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그를 죄의식을 주는 자로 보는지 구원을 주는 자로 보는지에 따라, 너는 그의 선물도 그렇게 보고 그렇게 받을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은 고통 속에 있기에, 고통을 준다. 그러나 구원된 자들은 고통을 치유받았기에, 기쁨을 준다. 누구나 자신이 받는 대로 주지만, 먼저 자신이 무엇을 받을지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주는 것과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을 보고,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인식할 것이다. 그리고 지옥에서도 천국에서도, 그의 결정을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110 너희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이 여정이 너희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무의미하다고 믿는 것을 하겠다고 나서는 자는 아무도 없다. 너희가 믿었던 것은 여전히 믿음직하며, 아주 부드럽지만 아주 강력한 믿음으로 너희를 보살핀다. 따라서 그것은 너희를 장막 저 높이로 들어올려, 하느님의 아들을 아버지의 확실한 보호 안에 안전하게 놓아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과 이 세상을 지나가는 긴 여정에 어떤 의미라도 부여하는 유일한 목적이다. 이러한 목적 없이는, 세상과 그 여정은 정녕 무의미하다. 너희는 함께 서있지만, 그것들에 어떤 목적이 있다고는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너희는 너희의 거룩한 친구 안에서 이 목적을 보고, 그것이 너희 자신의 것임을 인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