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잘못을 "죄"와 혼동하지 않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구분이야말로 구원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잘못은 교정할 수 있고, 틀린 것은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는, 죄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하다면,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죄에 대한 믿음은 필연적으로, 몸이 아닌 마음이 공격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에 근거를 둔다. 따라서 마음은 유죄며, 그 마음의 일부가 아닌 다른 마음의 사면을 받지 못하는 한 영원히 그렇게 남아있을 것이다. 잘못이 교정을 필요로 하듯, 죄는 처벌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처벌이 곧 교정이라는 믿음이야말로 분명 정신 이상이다.
18 죄는 잘못이 아니다. 죄는 오만함을 수반하는데, 그것은 잘못이라는 아이디어에는 없는 것이다. 죄를 짓는다는 것은 곧 실재를 침해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리라. 죄는 공격이 실제고 죄의식에 정당한 근거가 있다는 선언이다. 죄는 하느님의 아들이 유죄며, 따라서 그가 순결을 잃고 자신을 하느님이 창조하지 않으신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창조물은 영원하지 않은 것으로, 하느님의 뜻은 반대하거나 꺾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죄는 에고의 그 모든 허세 밑에 깔린 "거대한 환상"이다. 죄라는 것으로 인해, 하느님이 변하여 불완전해지셨기 때문이다.
19 하느님의 아들은 잘못 생각할 수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고, 심지어 마음의 힘을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데로 돌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죄를 지을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의 실재를 어떻게든 정말로 바꾸거나 유죄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죄는 바로 그러한 일을 하려고 한다. 바로 그러한 것이 죄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라는 전체 아이디어에 내재하는 그 모든 터무니없는 광기 때문에, 죄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죄의 대가는 죽음인데, 불사인 자가 과연 어떻게 죽을 수 있겠는가?
20 에고의 정신 이상 종교에서 중심 교의는, 죄는 잘못이 아니라 진리며, 순결이야말로 기만적이라는 것이다. 순수는 오만으로 보이고, 자아를 죄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거룩함이라고 지각된다. 이러한 교리야말로, 아버지가 창조하시고 영원히 그렇게 존재하기를 뜻하신 대로의 하느님 아들의 실재를 대체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겸손인가? 아니면, 창조물을 진리로부터 강탈하여 분리하려는 시도인가?
21 에고는 죄를 잘못으로 재해석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못한다. 죄라는 아이디어는 에고의 사고체계에서 완전히 신성불가침이며, 숭배와 경외심 없이는 다가갈 수도 없는 것이다. 죄는 에고의 체계에서 가장 "거룩한" 개념이다. 그것은 사랑스럽고 강력하고 전적으로 참이며, 에고가 모든 방어수단을 동원해서 기필코 보호하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에고의 "최고" 방어수단이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방어수단은 이것을 위해 작동한다. 이것은 에고의 갑옷이자 보호수단이며, 에고가 특별한 관계의 근본적인 목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22 사실 에고는 자신의 세상을 죄 위에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로지 그러한 세상에서만 모든 것이 뒤집혀 있을 수 있다. 바로 이런 기묘한 환상이야말로, 죄의식의 구름을 뚫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두터워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세상의 토대가 지닌 듯한 견고성도 바로 여기서 발견된다. 죄는 창조물을 하느님의 아이디어에서 에고가 원하는 이상으로 바꿔놓았다. 그것은 완전히 부패하고 썩을 수 있으며 무분별한 몸들로 구성된, 에고가 통치하는 세상이다. 이것이 만약 실수라면, 진리에 의해 쉽게 무효화될 수 있다. 그 어떤 실수도 진리의 판단에 맡겨진다면 교정될 수 있다. 그러나 실수에 진리의 지위가 부여된다면, 실수를 과연 어디로 가져갈 수 있겠는가? 죄의 "거룩함"은 단지 이런 이상한 도구에 의해 유지된다. 죄가 진리라면 그것은 신성불가침이며, 모든 것은 죄 앞으로 보내져 판단받아야 한다. 반면에 죄가 실수라면, 죄는 반드시 진리 앞으로 보내져야 한다. 죄를 믿는 것은 불가능하다. 죄란 곧 믿음 없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수가 교정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가능하다.
23 궁지에 몰린 에고의 그 모든 요새에서, 죄가 실제라는 아이디어보다 더 삼엄하게 지켜지는 돌은 없다. 이 아이디어는 하느님의 아들이 자신을 무엇으로 만들어버렸는지, 그리고 그의 정체는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표현해 준다. 에고에게, 이것은 실수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에고의 실재다. 이것이 바로 탈출이 영원히 불가능한 "진리"다. 이것은 하느님 아들의 과거자 현재며, 그의 미래기도 하다. 그는 어쨌든 용케도 아버지를 타락시키고 그분의 마음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죽음을 애통해하라. 죄가 하느님을 죽였도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에고의 소망일 것이다. 그리고 광기에 빠진 에고는 자신이 그것을 성취했다고 생각한다.
24 차라리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교정될 수 있고 너무도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실수에 지나지 않아서, 그것들을 전부 교정하는 것은 마치 안개를 뚫고 햇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기를 바라지 않으려는가? 왜냐하면, 그것이 전부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희는 실수하는 것보다는 죄 있는 것이 훨씬 낫다는 에고의 의견에 동의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너 자신이 이런 선택을 하도록 허락하기 전에 신중히 생각해 보라. 그것을 가볍게 다루지 말라. 그것은 정녕 천국과 지옥 사이의 선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