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너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야말로 네가 궁극적으로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한 깨달음을 통해 천국이 너에게 회복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오로지 천국만을 창조하셨으며, 천국을 떠나거나 당신과 떼어놓지 않으셨다. 천국은 하느님 아들이 사는 곳이며, 그는 아버지를 떠나지도 않았고 아버지와 떨어져 살지도 않는다. 천국은 어떤 장소도 조건도 아니다. 천국은 단지 완벽하게 하나인 상태에 대한 알아차림이며,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앎이다. 이 하나인 상태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고, 그 안에도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50 하느님이 당신에 대한 앎 외에 과연 무엇을 주실 수 있겠는가? 주실 것이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네가 다른 무언가를, 너 자신의 바깥에 있는 다른 무언가를 주고 얻을 수 있다고 믿음으로써, 너는 천국에 대한 알아차림과 너의 정체를 잃는 대가를 치렀다. 게다가 너는 네가 깨닫는 것보다 더 이상한 일도 저질렀다. 너는 너의 죄를 너의 마음에서 몸으로 옮겨놓았다. 하지만 몸은 죄가 있을 수 없다. 몸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가 너희의 몸을 증오한다고 생각한다면, 너희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그럴 때 너희는 사실 너희의 마음을 증오하는 것이다. 너희의 마음들 안으로 죄의식이 들어와서, 마음들이 서로 분리되어 있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51 마음들은 정녕 결합되어 있지만, 몸들은 그렇지 않다. 오로지 마음에게 몸의 특성을 부여하는 방법을 통해서만, 분리가 가능해 보인다. 그러면 이제 분열되어 있고, 사적이며, 홀로인 듯이 보이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을 분리 상태로 유지하는 마음의 죄의식이 몸에 투사되며, 그러면 몸은 고통받다 죽는다. 마음 안에 분리를 간직하고 마음으로 하여금 자신의 단일성을 알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몸이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마음은 공격할 수 없지만, 판타지를 만들어서 그것을 행동에 옮기라고 몸에게 지시할 수는 있다. 하지만 몸이 행하는 것은 결코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몸이 실제로 마음 자신의 판타지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것이 의심스러운 한, 마음은 자신의 죄의식을 몸에 더 많이 투사하여 몸을 공격할 것이다.
52 이런 면에서 마음은 분명 망상에 빠져있다. 마음은 공격할 수 없지만, 자신이 공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몸을 해치려고 행하는 것을 사용해서 자신이 공격할 수 있다고 증명하려 한다. 마음은 공격할 수 없지만, 자신을 속일 수는 있다. 마음이 몸을 공격했다고 믿을 때, 마음이 하는 것이라고는 이것이 전부다. 마음은 자신의 죄의식을 투사할 수 있지만, 투사를 통해 죄의식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은 분명 몸의 기능을 잘못 지각할 수 있지만, 성령이 확립한 몸의 기능과 다르게 바꿀 수는 없다. 몸은 사랑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은 몸을 정죄하지 않으며, 하느님의 아들이 만든 것을 존중하고 그를 환상에서 구하기 위해 사용하면서, 몸을 사랑스럽게 사용할 수 있다.
53 분리의 도구가 구원의 수단으로 재해석되어 사랑의 목적에 사용되도록 하지 않으려는가? 복수의 판타지가 판타지로부터의 해방으로 전환되는 것을 환영하고 지원하지 않으려는가? 몸에 대한 너의 지각은 분명 병들 수 있지만, 이것을 몸에 투사하지는 말라. 파괴할 수 없는 것을 파괴적으로 만들려는 너의 소망은 전혀 실재적인 결과를 낳을 수 없다. 그리고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은 하느님의 뜻이기에, 오로지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만 존재할 뿐이다. 너는 하느님의 뜻을 파괴적으로 만들 수 없다. 너는 너의 뜻과 하느님의 뜻이 상충하는 판타지를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다.
54 몸을 죄의식의 희생양으로 사용하여 공격을 지시하고는, 네가 몸이 하기를 원한 것 때문에 비난하는 것은 정신 이상이다. 판타지를 행위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여전히 네가 원하는 판타지며, 판타지는 몸의 행위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기 때문이다. 몸은 판타지를 꿈꾸지 않으며, 판타지는 몸을 자산이 될 수도 있는 곳에서 부채로 만들어버린다. 판타지는 너의 몸을 약하고, 쉽게 상처받고, 믿을 수 없으며, 네가 몸에 부여한 증오를 받아 마땅한 "적"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너는 네가 증오하는 이것, 복수의 도구자 네 죄의식의 지각된 근원인 이것과 동일시했다. 너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에게 그렇게 하고는, 그것을 하느님 아들의 처소라고 선포하고, 그것이 하느님의 아들을 등지게 했다.
55 이것이 바로 네가 만든, 하느님이 머무시는 집주인이다. 그러나 증오의 은신처, 네가 복수와 폭력, 죽음의 씨앗을 뿌린 거처에는 하느님도 그분의 가장 거룩한 아들도 들어갈 수 없다. 네가 너의 죄의식을 섬기라고 만든 이것이 너와 다른 마음들 사이에 서있다. 마음들은 정녕 결합되어 있지만, 너는 마음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너는 네가 추방되어 그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분리된 감옥에 갇혀있어서, 누군가 다가와도 손조차 내밀 수 없다고 본다. 너는 네가 만든 이 감옥을 증오하여 파괴하려 한다. 그러나 그 감옥을 파괴하지 않고 내버려둔 채, 그 감옥에 너의 죄의식을 덮어씌우지도 않고, 그저 빠져나오려고 하지는 않는다.
56 하지만 너는 오로지 그런 방법을 통해서만 벗어날 수 있다. 복수의 집은 네 것이 아니다. 너의 증오를 보관하려고 따로 떼어둔 곳은 감옥이 아니라, 너 자신에 대한 환상이다. 몸은 마음의 영원한 특성인 보편적인 소통에 부과된 한계다. 그러나 소통은 내적인 것이다. [마음은 서로에게 다가가는 다른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마음은 자기 자신에게 다가간다. 마음은 바깥으로 가지 않는다. 마음은 자신 안에서 한계가 전혀 없으며, 마음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마음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 마음은 너를 완전히 포함한다. 마음은 너를 자신 안에 포함하고, 자신을 네 안에 포함한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고, 어디에도, 언제까지라도 없다.
57 몸은 너의 바깥에 있다. 하지만 몸은 너를 둘러싸서 다른 사람들과 격리함으로써, 너를 그들로부터 [떼어놓고 그들을 너로부터] 떼어놓는 듯이 보인다. 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 사이에는 아무런 장벽도 없으며, 아들은 환상 속을 제외하고는 자기 자신과 분리될 수 없다. 이것은 그의 실재가 아니다. 비록 그는 그렇게 믿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하느님이 틀리셔야만 가능하리라. 이것이 가능하려면 하느님은 다르게 창조하셨어야 하고, 당신 자신을 아들로부터 분리하셨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하느님은 다른 것들을 창조하시고 실재의 다른 등급들을 확립하셔서, 그중 일부만 사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영원히 그 자체와 같아서 영원히 변함없고 영원히 대체품이 없어야 한다. 따라서 사랑은 정녕 그러하다. 너는 네 둘레로 장벽을 설치할 수 없다. 하느님은 당신과 너 사이에 아무런 장벽도 세우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58 너희는 손을 내뻗어 천국을 만질 수 있다. 서로 손을 맞잡은 너희는 몸 너머로 뻗어가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너희 자신 밖으로 가지 않고 너희가 공유하는 정체에 함께 도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너희 바깥에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 하느님이 몸이신가? 하느님이 너를 당신과 다르게, 당신이 계실 수 없는 곳에 창조하셨는가? 너는 오로지 하느님으로만 둘러싸여 있다. 하느님 안에 포함된 너에게 어떤 한계가 있겠는가? 누구나 자신 너머로 보내지는 느낌이라고 부를 만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이러한 해방의 느낌은 때로 특별한 관계에서 경험되는 자유의 꿈을 훨씬 넘어선다. 그것은 한계에서 정말로 벗어나는 느낌이다.
59 이런 "보내짐"이 실제로 무엇을 수반하는지 숙고해 보라. 그러면 너는 그것이 몸을 갑자기 의식하지 않게 되고, 너 자신이 다른 어떤 것과 결합하는 것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 너의 마음이 확장되어 그 다른 어떤 것을 포함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다른 어떤 것은 네가 그것과 연합함에 따라 너의 일부가 된다. 어느 쪽도 분리되었다고 지각되지 않기에, 둘 다 온전해진다. 여기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네가 제한된 의식이라는 환상을 포기하고 연합에 대한 두려움을 잃은 것이다. 두려움을 즉시 대체하는 사랑이 너를 해방한 것으로 확장하여, 그것과 연합한다. 이것이 지속되는 한, 너는 너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제한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너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화로 가서, 실재에 대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였다. 너는 몸 대신에 이것을 받아들였으며, 단지 너의 마음이 몸에 의해 제한되도록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너 자신이 몸 너머의 어떤 것과 하나가 되도록 허용했다.
60 이것은 네가 결합하려는 대상과 너 사이에 있는 듯한 물리적인 거리, 공간상 각자의 위치, 크기나 겉보기 특성의 차이와는 무관하게 일어날 수 있다. 시간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은 과거로 가버린 것, 현재에 있는 것, 혹은 미래에 예상되는 그 무엇과도 일어날 수 있다. 여기서 "그 무엇"은 어떤 대상이든 어떤 장소든 될 수 있다. 소리나 광경, 생각이나 기억, 심지어 구체적인 언급 대상이 없는 일반적인 아이디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경우에 너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그것과 하나가 된 것이다. 너는 그것을 사랑하며, 그것과 함께 있고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는 그것을 만나러 서둘러 달려가면서 너의 한계가 녹아 사라지게 하고, 너의 몸이 복종하는 모든 "법칙들"을 중지하여 부드럽게 밀쳐둔다.
61 이러한 벗어남에는 폭력이 전혀 없다. 몸은 공격받지 않으며, 단지 제대로 지각된다. 몸은 너를 제한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단지 네가 몸으로 하여금 너를 제한하도록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실제로 몸 "바깥으로 들어올려진" 것이 아니다. 몸은 너를 담아둘 수 없다. 너는 네가 있고자 하는 곳에 가면서, 자아의 느낌을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다. 육체적인 제약에서 해방되는 이러한 순간에, 너는 거룩한 순간에 일어나는 많은 것을 경험한다. 시간과 공간의 장벽이 제거되고, 갑자기 평화와 기쁨을 경험하며, 무엇보다도 몸에 대한 의식이 사라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도 사라진다.
62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네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한 너의 열망과 함께 일어나는 자아의 갑작스러운 확장이야말로 거룩한 순간이 지닌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다. 거룩한 순간은 너에게 자신의 안전한 품속에서 너 자신이 되라고 요청한다. 그곳에서 한계의 법칙이 너를 위해 제거되어, 너를 열린 마음과 자유로 맞아들인다. 이 피난처로 오라. 그곳에서 너는 평화로이 너 자신이 될 수 있다. 파괴도 "탈출"도 아닌, 단지 조용히 "녹아 들어감"을 통해 그렇게 된다. 그곳에서 평화가 너와 결합할 것이다. 그 이유는 단지 네가, 평화로워지라는 사랑의 다정한 부름에 응답하여 사랑에 가한 한계를 내려놓으려는 용의를 냄으로써, 사랑이 존재하고 사랑이 너를 데려온 곳에서 사랑과 결합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