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마음은 고통의 근원이 없는 곳에서 고통의 근원을 볼 수 있다. 너는 이러한 개념에 익숙하다. 전치가 하는 의심스러운 역할은 바로 네 죄의식의 진짜 근원을 감춰서, 그것이 정신 이상이라는 완전한 지각을 너의 의식으로부터 차단하는 것이다. 전치는 항상, 네가 주의를 기울이기를 피하는 근원이 참이고 두려울 것이라는 환상으로 유지된다. 그렇지 않다면 너는 죄의식을, 네가 덜 두렵다고 믿은 것으로 전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의식 아래에 있는 온갖 "근원들"을 거의 저항 없이 바라볼 용의가 있지만, 단 그 "근원들"은 그것들과 진정한 관계가 전혀 없는 보다 깊은 근원이 아니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인다.
21 정신 이상 아이디어들은 서로 어떤 진정한 관계도 없다. 그것이 바로 그 아이디어들이 정신 이상인 까닭이다. 진정한 관계는 죄의식에 기초할 수 없으며, 그 관계의 순수함을 훼손하는 죄의식의 얼룩이 단 한 점도 있을 수 없다. 죄의식이 건드린 모든 관계는 단지 상대방과 죄의식 모두를 피할 목적으로 사용된다. 네가 그동안 이런 이상한 목적을 위해 맺은 관계들이야말로 얼마나 이상한지! 진정한 관계들은 거룩하며, 전혀 네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너는 이 사실을 잊었다. 그 관계들은 오로지 성령만이 사용할 수 있으며, 바로 이 점이야말로 그 관계들을 순수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너는 성령께 드렸어야 할 것을 너 자신의 목적을 위해 먼저 차지해 버렸으며, 따라서 성령은 그것을 너의 해방을 위해 사용할 수 없다. 자신의 구원을 위해 누군가와 어떤 식으로든 연합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이상한 관계 안에서는 구원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관계는 공유되지 않으며, 따라서 실제가 아니다.
22 어떤 형제와 연합할 때, 너의 죄의식을 그에게 덮어씌우거나, 그와 공유하거나, 그의 죄의식을 지각하려 한다면, 너는 반드시 죄의식을 느낄 것이다. 그럴 때 너는 그와 실제로 연합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와의 관계에서 만족과 평화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너는 그 관계 안에서 죄의식을 볼 것이다. 왜냐하면 너 자신이 그곳에 죄의식을 놓았기 때문이다. 죄의식에 시달리는 자들이 죄를 전치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들은 죄가 있다고 정말로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내면으로 눈을 돌려 죄의식을 보내버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자신의 통제권 너머에 있는 자신의 바깥에서 죄의 근원을 지각하는 것이다.
23 너 자신이 유죄기는 하지만 그 근원은 과거에 놓여있다고 주장할 때, 너는 안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는 네 안에 있지 않다. 네가 과거와 관련짓는 괴상한 연상물들은 현재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하지만 너는 그것들을 너와 네 형제들 사이에 세워놓았기에, 그들과의 진정한 관계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과거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네 형제들을 이용하면서 네가 여전히 그를 있는 그대로 보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신의 형제를 이용하는 자는 구원을 찾을 수 없다. 너는 구원을 과거에 원한 것이 아니다. 너의 헛된 소망을 현재 위에 덧씌우고서 지금 구원을 찾기를 바라려는가?
24 그러니 과거의 너로 존재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라. 어떤 관계도 너 자신을 과거에 묶어두기 위해 사용하지 말고, 각각의 관계와 매일 다시 태어나라. 너 자신을 과거에서 해방하고 너의 마음을 평화로이 속죄에 맡기는 데 1분이면, 아니 더 짧은 시간이면 충분하다. 네가 아버지께 기꺼이 받아들여지고 싶듯이 모든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때, 너는 내면에서 아무런 죄의식도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 너는 이미 속죄를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죄의 꿈을 꾸면서 내면에서 속죄를 보려 하지 않는 동안에도, 속죄는 너의 내면에서 빛나고 있었다.
25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든 그가 어떤 식으로든 당연히 유죄라고 믿는 한, 너는 언제라도 속죄를 찾을 수 있는 내면으로 눈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죄의식에 어떤 이유가 있다고 믿는 한, 죄의식의 종말은 오지 않을 것이다. 죄의식은 항상 완전히 정신 이상이며, 아무런 이유도 없다. 너는 이를 배워야 한다. 성령은 실재를 물리치려고 하지 않는다. 만약 죄의식이 실제라면, 속죄는 실제가 아닐 것이다. 속죄의 목적은 환상을 물리치는 것이지, 먼저 환상을 실재로 확립한 다음에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26 성령은 너를 겁주고, 그가 너를 얼마나 무서운 것에서 구해줬는지 보여주려고 너의 마음 안에 환상을 간직하지 않는다. 성령이 너를 구해낸 그것은 사라졌다. 죄의식에 어떤 실재성도 부여하지 말고, 죄의식에는 어떤 근거도 없음을 보라. 성령은 하느님이 행하게 하시는 것을 행하며, 언제나 그렇게 해왔다. 성령은 분리를 보았지만, 연합에 대해 안다. 성령은 치유를 가르치지만, 창조에 대해 안다. 성령은 너로 하여금 그를 통해, 그가 보듯이 보고 그가 가르치듯이 가르치게 할 것이다. 이렇게 성령이 아는 것은 곧 네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27 바로 지금, 너는 치유하고 가르침으로써 앞으로 있을 것을 지금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지금이 아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자신이 죄의식 속에서 길을 잃고, 밖으로부터의 고통이 사방에서 짓누르는 어두운 세상에 홀로 있다고 믿는다. 그가 내면으로 눈을 돌려 광휘를 보았을 때, 아버지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지 않고 죄인으로 보신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죄의식은 정신 이상이며, 전적으로 정당하지 않고 전적으로 근거가 없음을 깨닫는 순간, 너는 두려움 없이 속죄를 바라보고 전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28 그동안 자기 자신을 무자비하게 대한 너는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너의 형제들을 자비 없이 바라보기에, 네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네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은 영원히 참이다. 너의 내면에서 빛나는 평화 속에는 완벽한 순수함이 있다. 그리고 너는 그 순수함 안에서 창조되었다. 네 안의 사랑스러운 진리를 바라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너의 비전을 흐리는 죄의식의 구름을 뚫고, 어둠을 지나쳐 거룩한 곳을 바라보라. 그곳에서 너는 빛을 볼 것이다. 네가 아버지께 바치는 제단은 그 제단을 당신 자신께 들어올리신 아버지만큼이나 순수하다. 그 무엇도 그리스도가 너로 하여금 보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뜻은 그의 아버지의 뜻과 같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모든 아이들에게 자비를 베풀면서 너도 그리하기를 원한다.
29 네가 해방되고자 하듯이 네 형제들을 죄의식에서 해방하라. 내면으로 눈을 돌려 사랑의 빛을 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 하느님이 언제나 아들을 사랑하셨고 아들이 하느님을 사랑하듯, 그 빛은 한결같고 확실하게 빛난다. 사랑에는 죄의식이 없기에, 두려움이 없다. 언제나 아버지를 사랑한 너는 어떤 이유로든 내면으로 눈을 돌려 자신의 거룩함을 보기를 두려워할 수 없다. 너는 결코 네가 너라고 믿었던 너일 수 없다. 너의 죄의식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다. 네가 있는 하느님의 마음 안에는 죄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이성이며, 바로 이것을 성령은 너에게 회복해 주고자 한다. 그는 오로지 환상들만 제거하고, 다른 모든 것은 너로 하여금 보게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비전 속에서, 성령은 하느님 아들의 내면에 영원히 존재하는 완벽한 순수함을 너에게 보여줄 것이다.
30 하느님의 아들을 전부 똑같이 사랑하지 않는 한, 너는 그중 누구와도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사랑은 특별하지 않다. 온아들 중 일부만 골라내서 사랑한다면, 너의 모든 관계에 죄의식을 덧씌워 그것들을 실제가 아닌 관계로 만드는 것이다. 너는 오로지 하느님처럼만 사랑할 수 있다. 하느님과 다르게 사랑하려 하지 말라. 하느님의 사랑과 다른 사랑이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참임을 인식하기 전에는, 사랑이 과연 어떤 것인지 짐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형제를 정죄하고도 자신이 하느님의 평화 속에서 죄가 없다고 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가 정녕 죄 없고 평화로운데도 그렇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면, 그는 정녕 망상에 빠져 자기 자신을 보지 않은 것이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31 하느님의 아들을 보라.
그의 순수를 바라보며 고요히 있으라.
침묵 속에 그의 거룩함을 바라보고,
어떤 죄도 그를 건드린 적이 없음에 대해 그의 아버지께 감사드려라.
32 네가 이제껏 하느님의 아들을 비난하기 위해 들이밀었던 어떤 환상도 그의 결백함을 조금도 건드리지 못했다. 죄가 전혀 건드리지 못했고 온전히 사랑하는 그의 빛나는 순수가 너의 내면에서 찬란히 빛난다. 우리 함께 그를 바라보고 사랑하자. 그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 너의 죄 없음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너 자신을 바라보라. 그러면 네가 보는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가 죄의식을 영원히 몰아낼 것이다. 아버지, 당신의 가장 거룩한 아들의 순수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그를 영원히 죄 없게 창조하셨습니다.
33 너와 마찬가지로 나의 신앙과 믿음도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우리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오로지 하느님이 나와 함께 사랑하시는 것만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이런 까닭에, 나는 네가 너 자신에게 매긴 가치 이상으로, 심지어는 하느님이 너에게 부여하신 가치만큼이나 너를 소중히 여긴다. 나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사랑하며, 나의 모든 신앙과 믿음을 그들에게 바친다. 너에 대한 나의 믿음은 내가 나의 아버지께 드리는 그 모든 사랑만큼이나 강하다. 너에 대한 나의 신뢰는 한계가 없으며, 네가 내 말을 경청하지 않으리라는 두려움도 없다. 너의 사랑스러움에 대해, 그리고 네가 왕국의 온전성을 기려 나로 하여금 왕국에 선사하게 할 수많은 선물에 대해, 나는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왕국은 정녕 아버지의 것이다.
34 아버지를 아들과 하나로 만드는 너에게 찬미를! 우리가 혼자 있을 때는 전부 보잘것없지만, 함께 있을 때는 너무도 강렬한 빛으로 빛나므로, 우리 중 누구도 혼자서는 그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왕국의 영광스러운 광휘 앞에서 죄의식은 녹아내려 친절함으로 변형되고, 다시는 과거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경험하는 모든 반응은 너무도 정화되어 아버지께 불러드리는 찬미의 송가가 될 만하다. 아버지가 창조하신 것에서 오로지 그분에 대한 찬미만을 보라. 아버지는 너에 대한 찬미를 결코 멈추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찬미 안에서 연합하여 천국 문 앞에 서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순결함 속에서 천국에 확실히 들어갈 것이다. 하느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그렇다면 내가 너에 대한 신앙이 없으면서 하느님을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35 죄의식이 평화를 가혹하게 유린했음을 지각한 자에게 에고가 주는 최선의 조언은, 그것을 망각과 잠, 심지어 죽음으로 다루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 중인 양자가 모두 실제라고 믿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자신이 갈등 속에 있고 잔혹한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네가 만약 둘 다 실제라고 믿는다면, 반드시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전쟁은 분명 네 마음의 평화를 끝장내서 결국에는 너를 파멸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가 그것은 단지 실제인 힘과 실제가 아닌 힘 사이의 전쟁임을 깨달을 수 있다면, 너 자신을 바라보고는 거기서 너의 자유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지각하는 끝없는 전쟁 속에서 자신이 황폐화되고 갈가리 찢긴다고 보는 자는 아무도 없다.
36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이 전쟁 중에 있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그가 지어낸 가상의 "적"은 전혀 실제가 아니다. 너는 이미 벗어난 참혹한 전쟁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을 뿐이다. 전쟁은 사라졌다. 너는 천국까지 울려 퍼지는 자유의 찬가를 들었다. 너의 해방으로 인한 즐거움과 기쁨은 하느님께 속한다. 너의 해방은 네가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는 자유를 만들지 않았듯이 자유를 위협할 전쟁도 만들지 않았다. 파괴적인 것은 그 무엇도 존재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과 죄의식, 그리고 과거는 그것들이 비롯된 비실재 속으로 하나같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