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텍스트
    • 오늘의 텍스트
    • 워크북
    • 교사용 지침서
    • 공지사항
    • 기적의 향기 책 구매
    • 기적수업 첫걸음
    • 기적수업 핵심 주제
    • 용서와 치유 나눔
    • 기적수업과 함께하는 여정
    • 자주 묻는 질문과 답
    • 기적수업 용어설명
    • 내 서재
피드백 보내기
  • 카페
  • 유튜브

Contact

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테마 색상
다크 모드

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10장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20분

제10장 하느님, 그리고 에고

Ⅱ. 투사 대 확장

3 너는 투사로써 만들었지만, 하느님은 확장으로써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창조는 너를 초석으로 한다. 그분의 사고체계는 빛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빛줄기들을 기억하라. 네가 그분의 사고체계의 중심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빛은 더 분명해진다. 네가 에고 사고체계[의 토대]에 더 가까이 갈수록, 길은 더 어둡고 흐릿해진다. 하지만 심지어 네 마음 안의 작은 불꽃조차도 그 길을 밝히기에 충분하다. 두려움 없이 그 빛을 가져와 에고 사고체계의 토대를 용감히 비추어라. 그것을 아주 정직하게 판단하겠다는 용의를 내라. 그것이 근거하는 공포의 어두운 초석을 열어, 그것을 빛으로 가지고 나오라. 빛 속에서, 너는 에고의 사고체계가 의미 없음 위에 얹혀있으며, 네가 두려워했던 모든 것이 무에 기반하고 있었음을 볼 것이다.

4 나의 형제여, 너는 하느님의 일부이자 나의 일부이다. 네가 뒤로 흠칫 물러서지 않고 마침내 에고의 토대를 본다면, 우리의 토대도 본 것이다. 나는 우리의 아버지로부터 너에게 가서, 모든 것을 다시 주고자 한다. 어두운 초석을 계속 감춰두기 위해 모든 것을 거절하지 말라. 그것을 보호한다고 네가 구원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너에게 등불을 주고, 너와 함께 걸어갈 것이다. 너는 이 여정을 혼자 밟아나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를 인도하여 너의 진짜 아버지께 데려갈 것이다. 그분은 내가 너를 필요로 하듯 너를 필요로 하신다. 사랑의 부름에 기쁨으로 응답하지 않으려는가?

5 그동안 너는 네가 치유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배웠다. 너 스스로는 치유되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온아들에게는 무언가 다른 것을 가져다주려 하는가? 바로 여기서 앎이 시작되며, 하느님은 바로 이 토대 위에 네가 당신과 공유하는 사고체계를 다시 세우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네가 그 위에 얹는 돌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축복하실 것이다. 너는 그분 아들의 거룩한 거처를 복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그분이 당신의 아들이 있기를 뜻하시는 곳이자, 그가 실제로 있는 곳이다. 네가 하느님 아들의 마음에서 어떤 부분에 이런 실재를 복구하든, 그것을 너 자신에게 복구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홀로 계시고자 뜻하지 않으셨기에, 너는 네 형제와 더불어 하느님의 마음 안에 머물러 살기 때문이다.

6 홀로 있음은 무한에서 분리되는 것이지만, 무한에 끝이 없다면 이런 일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그 누구도 무한 너머에는 있을 수 없다. 한계가 없는 것은 모든 곳에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 안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하느님의 우주는 곧 그분 자신이다. 너 자신을 우주로부터, 혹은 정녕 우주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제외할 수 있겠는가? 나와 나의 아버지는 너와 하나다. 너는 우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너는 정말로 하느님의 일부가 그분으로부터 없어지거나 상실될 수 있다고 믿는가?

7 네가 만약 하느님의 일부가 아니라면, 그분의 뜻은 통합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분 마음의 일부가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느님 마음 안의 너의 자리는 너 외에 다른 누구도 채울 수 없다면, 그리고 네가 창조됨으로써 그 자리가 채워졌다면, 너 없이는 그분의 마음에 빈자리가 있을 것이다. 확장은 가로막힐 수 없으며, 빈 공간이 없다. 확장은 아무리 부정되더라도 영원히 계속된다. 네가 확장의 실재성을 부정한다면 시간 안에서는 확장이 저지되겠지만, 영원 안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바로 너의 창조물들이 확장되기를 멈춘 적이 없으며, 네가 돌아오기를 그리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까닭이다.

8 기다린다는 것은 오로지 시간 안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시간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너는 지체하였지만, 영원하신 분은 시작도 끝도 창조하지 않으셨음을 그저 인식함으로써 시간을 뒤로하고 떠날 수 있다. 그분은 당신의 창조물이나 당신처럼 창조하는 자들에게 어떤 한계도 부과하지 않으셨다. 네가 이것을 모르는 이유는 단지, 네가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을 제한하려 했고, 따라서 모든 창조물이 제한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한을 부정해 버린 네가 어찌 너의 창조물들을 알 수 있겠는가? 우주의 법칙은 모순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느님께 적용되는 것은 너에게도 적용된다. 너 자신이 하느님 안에 없다고 믿는다면, 너는 하느님이 네 안에 계시지 않는다고 믿을 것이다.

9 무한은 너 없이는 무의미하고, 너도 하느님 없이는 무의미하다.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에게 끝이라는 것은 없다. 우리가 곧 우주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불완전하지 않으시며, 아이가 없지 않으시다. 그분은 홀로 계시고자 뜻하지 않으셨으므로, 당신을 닮은 아들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 아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말라. 네가 그분의 부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함으로써 너에게도 너의 부성이 부정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창조물들을 그분의 아들로 보라. 너의 창조물들은 그분께 경의를 표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우주는 네가 보지 않는다고 해서 멈추지 않으며, 너의 감긴 눈은 보는 능력을 잃지 않았다. 하느님 창조물의 영광을 바라보라. 그러면 너는 하느님이 너를 위해 무엇을 간직해 두셨는지 배울 것이다.

10 하느님은 너에게 당신의 마음 안에 있는 자리를 하나 주셨는데, 그것은 영원히 네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네가 받은 대로 주는 것이다. 하느님이 홀로 계시고자 뜻하지 않으셔서 그 자리를 너에게 주셨다면, 네가 그 자리에서 홀로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느님의 마음은 결코 줄어들 수 없다. 그 마음은 오로지 늘어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분이 창조하시는 모든 것은 창조하는 기능을 가졌다. 사랑은 제한하지 않으며, 사랑이 창조하는 것도 제한되어 있지 않다. 한계 없이 주는 것은 너를 위한 하느님의 뜻이다. 오로지 이것만이 너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쁨은 하느님의 것이며, 그분이 너와 공유하기를 뜻하시는 것이다. 너의 사랑은 곧 하느님의 것이므로, 그분의 사랑처럼 끝이 없다.

11 하느님의 어떤 부분이라도 그분의 사랑 없이 있을 수 있으며, 하느님 사랑의 어떤 부분이라도 억제될 수 있겠는가? 하느님은 곧 네가 받은 유산이다. 그분의 유일한 선물은 당신 자신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너에게 주시는 선물을 알고자 한다면, 네가 어찌 그분과 다른 방식으로 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한계도 없고 끝도 없이 줌으로써 그분이 너에게 얼마나 많이 주셨는지 배워라.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너의 능력은 그분이 주시듯이 주려는 너의 용의에 달려있다. 너의 부성과 너의 아버지는 정녕 하나다. 하느님은 창조하기를 뜻하셨으며, 너의 뜻은 곧 그분의 뜻이다. 그렇다면 너도 창조하기를 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너의 뜻은 그분의 뜻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의 뜻은 그분 뜻의 확장이기에, 두 뜻은 같을 수밖에 없다.

12 하지만 너는 네가 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부정하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임을 깨닫는다면, 이것은 이상하지 않다. 하느님의 뜻은 네가 당신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부정함으로써 너는 너 자신의 뜻을 부정했고, 따라서 너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모든 것에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그것이 정녕 너의 뜻이기 때문이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성령은 너를 대신해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너를 위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령께 물어라. 그러면 성령은 너에게 너의 뜻을 알려줄 것이다. 네가 너의 뜻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자주 반복해도 부족하다. 성령이 너에게 말해주는 내용이 강압적으로 느껴질 때마다, 그것은 단지 네가 너 자신의 뜻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3 에고의 투사는 마치 하느님의 뜻이 너 자신의 바깥에 있어서 너의 뜻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런 해석에서는, 그분의 뜻과 너의 뜻 사이의 갈등이 과연 가능하다. 그러면 그분은 네가 드리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요구하셔서, 그 결과 네가 원하는 것을 빼앗아 가시는 듯이 보일 수 있다. 오로지 너의 뜻만 원하시는 하느님이 그러실 수 있겠는가? 너의 뜻은 하느님의 생명이며, 그분은 그 생명을 너에게 주셨다. 심지어 시간 안에서조차 너는 그분과 떨어져 살 수 없다. 잠은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은 잠들 수 있지만, 죽을 수는 없다. 불멸성은 그분이 아들에게 뜻하시는 것이자 아들이 자신에게 뜻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은 자신에게 죽음을 뜻할 수 없다. 그의 아버지는 생명이시며, 아들은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이다. 창조는 그분의 뜻이기 때문에, 곧 너의 뜻이다.

14 네가 진정으로 뜻하는 것을 행하지 않는 한, 너는 행복할 수 없다. 그리고 너는 이것을 바꿀 수 없다. 이것은 바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 그리고 너의 뜻에 의해, 바뀔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의 뜻은 확장되지 않았을 것이다. 네가 하느님의 뜻을 알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것이 너의 뜻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이 너의 모든 병이자 두려움이다. 여기서, 병과 두려움의 모든 증상이 발생한다. 이것은 너로 하여금 알지 않기를 원하도록 만드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믿기에, 너는 어둠 속에 숨으면서 빛이 네 안에 있음을 부정한다.

15 너에게 성령을 신뢰하라고 요청하는 이유는 단지, 성령은 너를 대변해 말하기 때문이다. 성령은 하느님을 대변하는 음성이지만, 하느님이 홀로 계시고자 뜻하지 않으셨음을 결코 잊지 않는다. 그분은 당신의 뜻을 너와 공유하실 뿐, 너에게 강제로 떠안기지 않으신다. 그분은 당신이 주시는 것을 간직하셔서, 그중 어느 것도 당신을 반대할 수 없게 하신다. 이를 항상 기억하라. 하느님의 생명을 공유하는 네가 그것을 알려면, 그것을 공유해야 한다. 공유하는 것은 곧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뜻을 듣는 것이 곧 자신의 뜻을 아는 것임을 배우는 자여, 너는 참으로 축복받았다. 아버지를 닮는 것은 곧 너의 뜻이며, 그것이 그러함이 그분의 뜻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은 당신의 아들이 하나이며, 당신의 하나인 상태 안에서 당신과 연합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치유란 너의 뜻이 곧 그분의 뜻임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제10장 하느님, 그리고 에고 - Ⅰ. 서문제10장 하느님, 그리고 에고 - Ⅲ. 치유를 위한 용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