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에고의 구원 계획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정반대라는 점은 인식했지만, 그것이 그분의 계획에 대한 적극적인 공격이며, 그것을 파괴하려는 고의적인 시도라는 점은 아직 강조하지 않았다. 그러한 공격을 통해 실제로는 에고와 관련된 속성이 하느님께 부여되며, 반면에 에고는 하느님의 속성을 띠는 듯이 보인다.
2 에고의 근본적인 소망은 하느님을 대체하는 것이다. 사실 에고란 이러한 소망이 육체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이러한 소망이야말로 마음을 몸으로 둘러싸서 홀로 분리되어 있게 만듦으로써, 마음을 가두려고 만들어진 몸을 통하지 않고서는 다른 마음에게 다가갈 수 없도록 만드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소통에 부과된 제한이 소통을 확장하는 최선의 수단일 수는 없다. 하지만 에고는 너로 하여금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게 하려 한다.
3 여기서 우리는 몸이 부과하는 제한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명백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불만을 품는 것이 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공격인지는 그리 분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주로 어떤 것에 불만을 품는지 살펴보자. 그것은 항상 몸이 행하는 어떤 것과 관련되지 않는가? 어떤 사람이 네가 좋아하지 않는 말을 한다. 그가 너를 불쾌하게 하는 어떤 행동을 한다. 그가 자신의 적대적인 생각을 행위를 통해 "무심코 드러낸다."
4 그럴 때 우리는 그 사람 자체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는 단지 그가 몸 안에서 행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우리는 그가 몸의 제한에서 해방되도록 돕지 못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심한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몸을 그와 혼동하고 그와 몸이 하나라고 판단함으로써, 그를 적극적으로 몸에 묶어두려 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하느님이 공격을 받으신다. 그분의 아들이 단지 하나의 몸에 불과하다면, 그분도 분명 그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창조물과 전혀 다른 창조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5 하느님이 한낱 몸이시라면, 그분의 구원 계획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것이 과연 죽음 외에 무엇이 될 수 있겠는가? 자신을 죽음의 저자가 아닌 생명의 저자로 나타내려는 하느님은 분명, 거짓된 약속을 남발하고 진리 대신 환상을 제공하는 거짓말쟁이이자 사기꾼일 것이다.
6 몸의 겉보기 실재성 때문에, 하느님에 대한 이런 관점은 아주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사실 몸이 실제라면, 그런 결론을 내리지 않기가 정녕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너는 불만을 품을 때마다 몸이 실제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네 형제의 정체를 완전히 간과한다. 불만은 그가 몸이라는 너의 믿음을 강화하며, 그런 믿음을 이유로 그를 정죄한다. 불만은 그의 구원은 죽음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공격을 하느님께 투사하여 공격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7 이렇게 성난 짐승들이 먹잇감을 구하고, 자비가 들어올 수 없도록 철저히 준비된 투기장에, 에고가 너를 구원하려고 들어온다. 하느님이 너를 몸으로 만드셨다. 잘 됐다! 이를 받아들이고 기뻐하자. 너는 몸이니, 몸이 제공하는 것을 빼앗기지 말라. 네가 얻을 수 있는 하찮은 것을 취하라. 하느님은 너에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았다. 몸이 너의 유일한 구원자다. 몸은 곧 하느님의 죽음이자 너의 구원이다.
8 이것이 바로 네가 보는 세상의 보편적인 믿음이다. 어떤 사람들은 몸을 증오하여, 몸을 해치고 모욕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몸을 사랑하여, 몸을 찬양하고 드높이려고 한다. 그러나 너 자신에 대한 개념의 중심에 몸이 있는 한, 너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공격하고 그분과 그분의 창조물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진리의 음성을 듣지도 않고, 그 음성을 친구로 환영하지도 않을 것이다. 대신에 네가 선택한 구원자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가 너의 친구가 되고, 진리의 음성은 너의 적이 된다.
9 우리는 오늘 구원에 대한 이런 어리석은 공격을 중단하고, 대신에 구원을 환영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위아래가 뒤집힌 너의 지각은 네 마음의 평화를 파괴했다. 너는 그동안 네가 몸 안에 있다고 보았고, 진리는 너의 밖에 있는 것으로서 몸의 제한으로 인해 너의 의식으로부터 차단되었다고 보았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다르게 보려고 한다.
10 진리의 빛은 우리 안에 있다. 그곳에 하느님이 진리를 두셨다. 몸이야말로 우리의 바깥에 있는 것이며,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몸 없이 존재하는 것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진리의 빛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의 자아가 몸과 별개라고 보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공격을 끝내고, 그 대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계획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든 곳에서 이미 성취되었다.
11 오늘 긴 연습의 목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우리 안에서 이미 성취되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공격을 수용으로 대체해야 한다. 우리가 그것을 공격하는 한, 우리는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판단을 내려놓고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물으려고 한다:
12 아버지, 구원이 무엇입니까?
저는 알지 못합니다.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해 주소서.
13 그런 다음 우리는 조용히 하느님의 응답을 기다릴 것이다.
14 우리는 그동안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무엇인지 들으려고 기다리지 않고, 그것을 공격했다. 우리는 너무도 시끄럽게 불만을 늘어놓다 보니,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 우리는 불만을 이용해서 우리의 눈을 가리고 귀를 틀어막았다. 이제 우리는 보고, 듣고, 배우고자 한다. "아버지, 구원이 무엇입니까?" 물어라. 그러면 응답을 받을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15 우리는 더 이상 구원이 무엇이고 구원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에고에게 묻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진리에게 묻는다. 그러니 네가 묻는 상대방으로 인해, 그 답이 참일 것임을 확신하라. 확신이 약해지고 성공의 희망이 깜빡거리다가 꺼지는 듯할 때마다, 네가 지금 무한한 것의 무한한 창조주, 너를 당신과 닮게 창조하신 분께 묻고 있음을 기억하면서, 다시 한번 질문하고 요청하라:
16 아버지, 구원이 무엇입니까?
저는 알지 못합니다.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해 주소서.
17 하느님이 응답하실 것이다. 듣겠다고 결심하라.
18 오늘 짧은 연습은 한 시간에 한두 번으로 족하다. 오늘은 보통 때보다 조금 길게 연습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습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라:
19 불만을 품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공격입니다.
그 대신 제가 당신의 계획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버지, 구원이 무엇입니까?
20 그런 다음 되도록 눈을 감고 1, 2분 정도 조용히 기다리면서, 하느님의 응답에 귀 기울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