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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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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과 - 10과
11과 - 20과
21과 - 30과
31과 - 40과
41과 - 50과
복습 I
51과 - 60과
61과 - 70과
71과 - 80과
복습 II
81과 - 90과
91과 - 100과
101과 - 110과
복습 III
111과 - 120과
121과 - 130과
131과 - 140과
복습 IV
141과 - 150과
151과 - 160과
161과 - 170과
복습 V
171과 - 180과
181과 - 190과
191과 - 200과
복습 VI
201과 - 210과
211과 - 220과
기적수업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13분

결정하는 힘은 나 자신의 것이다.

1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상실을 겪을 수 없다. 스스로 고통스러운 상태를 선택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고통을 겪지 않는다. 그 누구도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수 없으며, 아프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스스로 이러한 결과를 원하지 않는 한 말이다. 스스로 동의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죽지 않는다.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어김없이 너의 소망을 나타내며, 네가 선택하는 모든 일은 어김없이 일어난다. 여기에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완벽한 너의 세상이 있다. 여기에 너를 위한 세상의 실재 전체가 있다. 그리고 오로지 여기에만 구원이 있다.

2 너는 어쩌면 이러한 견해가 너무 극단적이고 포괄적이어서 도저히 참일 수 없다고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리에 예외가 있을 수 있겠는가? 네가 모든 것이라는 선물을 가졌다면, 상실이 실제일 수 있겠는가? 고통이 평화의 일부거나, 슬픔이 기쁨의 일부일 수 있겠는가? 사랑과 완벽한 거룩함이 머물러 사는 마음에 두려움과 병이 들어올 수 있겠는가? 진리가 진리라면 모든 것을 포괄해야 한다. 진리와 반대되는 것이나 예외는 그 무엇도 받아들이지 말라. 받아들인다면, 너는 진리 전체를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구원이란 진리가 참이며, 다른 것은 참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너는 전에 이 말을 들었지만, 아직은 이 말의 두 부분을 전부 받아들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첫 번째 부분이 없다면 두 번째 부분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나 두 번째 부분이 없다면 첫 번째 부분도 더 이상 참이 아니다. 진리에는 반대되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아무리 자주 반복해 말하거나 생각해도 지나치지 않다. 만약 참이 아닌 것이 참인 것만큼이나 참이라면 진리의 일부는 거짓일 것이며, 따라서 진리는 이미 그 의미를 잃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진리만이 참이며, 거짓인 것은 거짓이다.

4 이것은 가장 단순한 구분이지만, 가장 모호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유는 그것이 지각하기 어려운 구분이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너의 선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선택들 뒤에 감춰져 있다. 따라서 진리에는 일관성과 어긋나는 어떤 측면들이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러한 측면들은 네가 도입한 모순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5 하느님이 너를 창조하셨으므로, 너는 정의상 거짓인 일시적인 상태에 따라 바뀌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모든 감정의 변화, 몸과 마음의 상태는 물론 모든 의식과 반응의 변화도 포함한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거짓과 구분하고, 거짓을 그 정체대로의 진리와 떼어놓는 전체 포괄성이다.

6 네가 보는 세상을 네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오만이라고 믿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하느님은 그 세상을 만들지 않으셨다. 이 점은 너도 확신할 수 있다. 덧없는 것들, 사악하고 죄 많은 것들, 두려워하는 것들, 고통받고 외로운 것들, 그리고 죽을 수밖에 없는 몸 안에 살고 있는 마음에 대해 하느님이 무엇을 아실 수 있겠는가? 이러한 것들이 실재성을 가진 듯한 세상을 하느님이 만드셨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단지 하느님을 정신 이상이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광기에 빠지지 않으셨다. 하지만 오로지 광기만이 이러한 세상을 만든다.

7 하느님이 혼돈을 만드셨고, 당신 자신의 뜻에 반대하시며, 진리에 반대되는 것들을 지어내셨고, 생명을 이기려고 죽음에 시달리신다고 생각하는 것-이 모든 것은 오만이다. 겸허는 이것들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았음을 단박에 알아볼 것이다. 너는 과연 하느님이 창조하지 않으신 것을 볼 수 있겠는가?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단지 하느님이 존재하라고 뜻하지 않으신 것을 지각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오만이 어디에 있겠는가?

8 오늘 진실로 겸허해져서 우리가 만든 것을 그 정체대로 받아들이자. 결정하는 힘은 우리 자신의 것이다. 우주의 공동 창조자로서 너의 정당한 자리를 그저 받아들이겠다고 결정하라. 그러면 네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너의 의식에 떠오를 것은, 늘 존재했으며 영원히 지금처럼 존재할 모든 것이다. 그것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제단을 찬탈하려고 만들어진 자기기만을 대체할 것이다.

9 오늘 우리는 진정한 겸허를 연습하면서, 더 이상 거짓으로 겸허한 척하지 않을 것이다. 에고는 거짓 겸허를 가지고 진정한 겸허가 오만이라고 증명하려 한다. 오로지 에고만이 오만할 수 있다. 그러나 진리는 자신의 막강함과 변함없음, 영원한 온전성을 겸허하게 인정한다. 이것은 모든 것을 포괄하며, 하느님이 당신의 사랑받는 아들에게 주시는 완벽한 선물이다.

10 우리는 우리가 죄 있고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정체를 부끄러워하는 죄인이라고 말하는 오만을 내려놓고, 그 대신 우리를 권능과 사랑에 있어 당신과 닮도록 흠 없이 창조하신 하느님을 향해 우리의 가슴을 진정으로 겸허하게 들어올린다. 결정하는 힘은 우리 자신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우리의 정체를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아들을 겸허하게 인식한다.

11 하느님의 아들을 인식하는 것은 또한, 모든 자아 개념을 내려놓고 그것을 거짓이라고 인식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 모든 자아 개념의 오만을 지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겸허함 속에서 하느님 아들의 광휘와 온유함과 완벽한 죄 없음, 그의 아버지의 사랑, 천국에 대한 그의 권리와 지옥으로부터의 해방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기쁘게 받아들인다.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되어, 거짓은 거짓이고 오로지 진리만이 참임을 기쁘게 인정한다.

12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서 진리만을 생각하고, 5분 동안 진리의 길을 연습하면서 우리의 겁먹은 마음을 다음과 같이 격려한다:

13 결정하는 힘은 나 자신의 것이다.

오늘 나는,

아버지의 뜻이 창조한 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겠다.

14 그런 다음 우리는 모든 자기기만을 포기하고, 우리의 자아가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 주기를 겸허히 요청한 다음, 잠잠히 기다릴 것이다. 그러면 결코 떠난 적이 없는 자아가 자신의 집을 본래 의도된 대로 하느님께 돌려드린 것에 대해 고마워하면서, 우리의 의식에 다시 찾아올 것이다.

15 온종일 너의 자아를 끈기 있게 기다리고, 매시 정각마다 하루를 시작한 말로 너의 자아를 초대하라. 그리고, 너의 자아를 초대하는 똑같은 말로 하루를 마쳐라. 하느님의 음성이 응답할 것이다. 그는 너와 너의 아버지를 위해 말하기 때문이다. 그는 너의 모든 광적인 생각을 하느님의 평화로, 자기기만을 하느님의 진리로, 너 자신에 대한 환상을 하느님의 아들로 대체할 것이다.

제 151과제 153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