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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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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1. 하느님의 교사들은 누구인가?2. 하느님의 교사의 학생들은 누구인가?3. 가르침의 수준들이란 무엇인가?4. 하느님의 교사들의 특성은 무엇인가?5. 치유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6. 치유는 확실한가?7. 치유는 반복되어야 하는가?8. 난이도를 지각하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9. 하느님의 교사는 생활 환경에 변화를 요구받는가?10. 판단을 어떻게 포기하는가?11. 이 세상에서 평화가 어떻게 가능한가?12. 세상을 구하려면 얼마나 많은 하느님의 교사가 필요한가?13. 희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14. 세상은 어떻게 끝날 것인가?15. 각 사람은 결국에 심판을 받을 것인가?16. 하느님의 교사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17. 하느님의 교사는 학생의 마법 생각을 어떻게 다루는가?18. 교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19. 정의란 무엇인가?20. 하느님의 평화는 무엇인가?21. 말은 치유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22. 치유와 속죄는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23. 예수는 치유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는가?24. 환생은 참인가?25. “심령” 능력은 바람직한가?26. 하느님께 직접 도달할 수 있는가?27. 죽음이란 무엇인가?28. 부활이란 무엇인가?29. 그 밖의 주제에 대해
기적수업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9분

7. 치유는 반복되어야 하는가?

1 이 질문은 실제로 그 자체가 답이다. 치유는 반복될 수 없다. 환자가 치유되었다면, 그에게 치유되어야 할 무엇이 남아있겠는가? 우리가 이미 말한 대로 치유가 확실하다면, 반복해야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느님의 교사가 치유의 결과에 대해 계속 걱정하는 것은 곧 치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제 하느님의 교사 자신이야말로 마음의 치유가 필요하다. 그는 바로 이것을 촉진해야 한다. 이제 그 자신이 환자며, 그는 자신을 그렇게 간주해야 한다. 그는 실수를 했으며, 그것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바꾸겠다는 용의를 내야 한다. 진정한 주기를 가능하게 하는 신뢰가 결핍됐으며, 따라서 그는 자신의 선물로 인한 혜택을 받지 못했다.

2 하느님의 교사는 치유를 위한 통로가 되려고 시도할 때마다 성공했다. 그가 이를 의심하려는 유혹을 받는다면, 이전의 노력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이미 최대치였다. 성령은 그의 노력을 최대치로 받아들여서 최대치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제 하느님의 교사에게는 따라야 할 과정이 하나밖에 없다. 그는 그 문제를 결코 실패할 수 없는 분께 드렸다고 이성을 사용하여 자기 자신에게 말해주고, 자신의 의심은 사랑이 아닌 두려움이므로 결국 증오임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그의 입장은 옹호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전에 사랑을 제공했던 이에게 증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사랑을 제공했기에, 오로지 사랑만이 받아질 수 있다.

3 하느님의 교사는 바로 이것을 신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기적일꾼의 유일한 의무는 스스로 속죄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다. 하느님의 교사가 기적일꾼인 이유는, 그가 자신이 받은 선물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먼저 선물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으며, 그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치유를 받아들임으로써 치유를 줄 수 있다. 그가 이를 의심한다면, 그 선물을 누가 주었고 누가 받았는지 기억하게 하라. 이와 같이 그의 의심이 교정된다. 그는 하느님의 선물이 거둬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실수였지만, 계속 거기 머무를 실수는 아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교사는 실수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실수가 그를 위해 교정되도록 허용할 수 있을 뿐이다.

4 겉보기에 계속되는 증상 때문에 치유를 의심하는 것은 신뢰의 결핍이라는 형식을 취한 실수다. 이것은 인식하기 가장 어려운 유혹 중에 하나다. 그것은 신뢰의 결핍이기에, 공격이다. 하지만 그것은 보통 정반대로 보인다. 계속 걱정하는 것은 곧 공격이라는 말을 들으면 처음에는 불합리하게 들린다. 그것은 사랑의 모든 겉모습을 지녔다. 하지만 신뢰 없는 사랑은 불가능하며, 의심과 신뢰는 공존할 수 없다. 그리고 증오는 그것이 취한 형식과 상관없이 사랑의 반대다. 선물을 의심하지 말라. 그러면 그 결과를 의심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바로 이런 확신이 하느님의 교사들에게 기적일꾼이 될 권능을 부여한다. 그럴 때 그들은 하느님을 신뢰하기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5 하느님의 교사에게 해결하라고 주어진 문제가 어떤 것이든, 그 결과에 대한 의심의 진짜 이유는 언제나 자기 의심이다. 그것은 환상에 불과한 자아를 신뢰했음을 함축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아만이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환상은 많은 형식을 띨 수 있다. 어쩌면 약함과 취약함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부족하다는 느낌과 관련된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수치심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거짓된 겸허에서 비롯되는 죄지은 것 같은 당혹감이 있을 것이다. 실수의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단지 실수를 실수로 인식하는 것뿐이다.

6 그런 실수는 항상 자아에 대한 걱정의 일종인데, 거기서 환자는 배제되어 있다. 그것은 환자를 자아의 일부로 인식하는 데 실패한 것이며, 따라서 정체성의 혼란이다. 너의 정체에 대한 갈등이 너의 마음에 들어왔고, 너는 너 자신에 대해 속게 되었다. 그리고 네가 너 자신에 대해 속는 이유는, 네가 창조된 근원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치유만을 제공하고 있다면, 너는 의심할 수 없다. 문제가 해결되기를 정말로 원한다면, 너는 의심할 수 없다. 문제가 무엇인지 확신한다면, 너는 의심할 수 없다. 의심은 갈등하는 소망들의 결과다.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히 하라. 그러면 의심은 불가능해진다.

6. 치유는 확실한가?8. 난이도를 지각하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