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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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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1. 하느님의 교사들은 누구인가?2. 하느님의 교사의 학생들은 누구인가?3. 가르침의 수준들이란 무엇인가?4. 하느님의 교사들의 특성은 무엇인가?5. 치유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6. 치유는 확실한가?7. 치유는 반복되어야 하는가?8. 난이도를 지각하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9. 하느님의 교사는 생활 환경에 변화를 요구받는가?10. 판단을 어떻게 포기하는가?11. 이 세상에서 평화가 어떻게 가능한가?12. 세상을 구하려면 얼마나 많은 하느님의 교사가 필요한가?13. 희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14. 세상은 어떻게 끝날 것인가?15. 각 사람은 결국에 심판을 받을 것인가?16. 하느님의 교사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17. 하느님의 교사는 학생의 마법 생각을 어떻게 다루는가?18. 교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19. 정의란 무엇인가?20. 하느님의 평화는 무엇인가?21. 말은 치유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22. 치유와 속죄는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23. 예수는 치유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는가?24. 환생은 참인가?25. “심령” 능력은 바람직한가?26. 하느님께 직접 도달할 수 있는가?27. 죽음이란 무엇인가?28. 부활이란 무엇인가?29. 그 밖의 주제에 대해
기적수업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10분

24. 환생은 참인가?

1 궁극적인 의미에서, 환생은 불가능하다. 과거도 미래도 없으며, 몸속으로 태어난다는 아이디어는 한 번이든 여러 번이든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니 환생은 그 어떤 진정한 의미에서도 참일 수 없다. 우리의 유일한 질문은, "이 개념이 도움이 되는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당연히 이 개념이 무엇을 위해 사용되는지에 달려있다. 환생이라는 개념이 생명의 영원한 본성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기 위해 사용된다면, 그것은 정녕 도움이 된다. 이 개념에 대한 다른 어떤 질문이 실제로 길을 밝히는 데 쓸모가 있겠는가? 여러 다른 믿음들처럼, 이 개념도 몹시 오용될 수 있다. 최소한, 이러한 오용은 과거에 몰두하게 하거나 과거에 대해 자만하게 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그것은 현재에 무력감을 일으킨다. 그 사이에 온갖 어리석음이 있을 수 있다.

2 어떤 상황에서든 환생은 지금 다뤄야 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지금 봉착한 곤란에 대해 환생이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그의 과제는 여전히 그 곤란에서 오로지 지금 벗어나는 것이다. 그가 내세를 위한 토대를 쌓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구원을 오로지 지금 이룰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환생 개념이 위안이 될 수 있고, 만약 이 개념이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면, 그 가치는 자명하다. 하지만 환생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모두 구원으로 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이 아이디어를 커리큘럼에 필수적이라고 여길 수는 없다. 현재를 과거의 관점에서 보는 것에는 항상 어떤 위험이 있다. 생명과 몸은 같지 않다는 아이디어를 강화하는 모든 생각에는 항상 어떤 이점이 있다.

3 우리의 목적을 위해, 환생에 대해 어떤 확고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교사는 환생을 믿지 않는 자에게 도움이 되듯이 믿는 자에게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에게 환생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취할 것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그의 유용성뿐만 아니라 의사 결정권도 제한할 것이다. 그의 공식적인 믿음과 상관없이, 우리의 수업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개념에도 관심이 없다. 그는 자신의 에고에 대처하기에도 힘겨울 텐데, 분파적인 논쟁으로 더 큰 부담을 주는 것은 지혜롭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 수업이 자신의 오랜 믿음을 옹호한다는 이유만으로 수업을 조급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어떤 이점이 있지도 않을 것이다.

4 이 수업이 생각을 철저히 뒤집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마침내 그러한 목적이 성취되면, 환생의 타당성과 같은 주제들은 무의미해진다. 그때까지는, 그러한 주제들은 단지 논란만 일으키기 십상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교사는 이러한 모든 질문에서 물러나 있는 편이 현명하다. 그것들 외에도 가르치고 배울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주제들은 단지 시간을 정해진 목적에서 빼내서 허비할 뿐이다. 하느님의 교사는 반드시 이를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어떤 개념이나 믿음에 도움이 될 측면이 있다면, 그는 그것에 대해 듣게 될 것이다. 그는 또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도 듣게 될 것이다. 그가 무엇을 더 알아야 하겠는가?

5 이것은 하느님의 교사 자신이 환생을 믿어서는 안 된다거나, 환생을 믿는 사람들과 그것에 대해 토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분명히 "아니다!"이다. 그가 환생을 정말로 믿는다면, 그의 내면의 교사가 그러라고 조언하지 않는 한 그 믿음을 포기하는 것은 실수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의 교사가 그렇게 조언할 리는 거의 없다. 그는 학생이나 그 자신의 발전을 해치는 어떤 방식으로 그 믿음을 오용하고 있다는 조언을 받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재해석이 필요할 것이므로, 재해석이 권유될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탄생은 시작이 아니었고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점이 그가 인식해야 할 전부다. 하지만 초심자에게는 그만큼도 요구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자신이 아는 것이 배워야 할 전부는 아닐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의 여정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6 이 수업의 강조점은 언제나 똑같다: 너에게 완벽한 구원이 제공되는 때는 바로 이 순간이며, 네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때도 바로 이 순간이다. 이것은 여전히 너의 유일한 책임이다. 속죄는 과거로부터의 전적인 벗어남, 미래에 대한 전적인 무관심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천국은 여기에 있다. 다른 곳이란 없다. 천국은 지금이다. 다른 시간이란 없다. 하느님의 교사는 이것으로 이어지지 않는 어떤 가르침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제대로 해석된다면, 모든 믿음은 이것을 가리킬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 믿음들의 진실성은 그것들의 유용성에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발전으로 이어지는 모든 믿음은 존중받아야 한다. 이것이 이 수업이 요구하는 유일한 기준이다. 그 이상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

23. 예수는 치유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는가?25. "심령" 능력은 바람직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