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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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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1. 하느님의 교사들은 누구인가?2. 하느님의 교사의 학생들은 누구인가?3. 가르침의 수준들이란 무엇인가?4. 하느님의 교사들의 특성은 무엇인가?5. 치유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6. 치유는 확실한가?7. 치유는 반복되어야 하는가?8. 난이도를 지각하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9. 하느님의 교사는 생활 환경에 변화를 요구받는가?10. 판단을 어떻게 포기하는가?11. 이 세상에서 평화가 어떻게 가능한가?12. 세상을 구하려면 얼마나 많은 하느님의 교사가 필요한가?13. 희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14. 세상은 어떻게 끝날 것인가?15. 각 사람은 결국에 심판을 받을 것인가?16. 하느님의 교사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17. 하느님의 교사는 학생의 마법 생각을 어떻게 다루는가?18. 교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19. 정의란 무엇인가?20. 하느님의 평화는 무엇인가?21. 말은 치유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22. 치유와 속죄는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23. 예수는 치유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는가?24. 환생은 참인가?25. “심령” 능력은 바람직한가?26. 하느님께 직접 도달할 수 있는가?27. 죽음이란 무엇인가?28. 부활이란 무엇인가?29. 그 밖의 주제에 대해
기적수업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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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심령" 능력은 바람직한가?

1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앞의 질문에 대한 답과 아주 비슷하다. 물론 "비자연적인" 능력이란 것은 없으며, 존재하지도 않는 어떤 힘을 지어내려는 것은 명백히 마법에 호소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각 사람에게는 그가 자각하지 못하는 많은 재능이 있다는 점도 똑같이 분명하다. 그의 자각이 증가함에 따라, 그 자신도 깜짝 놀랄 만한 재능을 개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행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영광스러운 놀라움과는 전혀 비할 바가 못 된다. 그의 모든 배움과 그의 모든 노력이 이 하나의 위대한 마지막 놀라움을 향하게 하라. 그러면 그는 도중에 나타날 수도 있는 사소한 놀라운 일들 때문에 지체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2 확실히, 이 수업과 명백하게 일치하는 "심령" 능력이 많이 있다. 소통은 세상이 인식하는 좁은 범위의 통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구원을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세상이 소통에 가하는 한계는 성령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을 가로막는 주된 장애다. 비록 성령의 현존은 항상 있고, 성령의 음성은 그저 듣기만 하면 되지만 말이다. 그러한 한계는 두려움 때문에 가해졌다. 그 한계가 없다면 세상의 그 모든 분리된 장소를 둘러싼 벽은 성령의 음성의 거룩한 소리 앞에서 무너져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러한 한계를 초월하는 자는 단지 더 자연스러워질 뿐이다. 그는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의 성취에는 어떤 마법도 없다.

3 도중에 얻을 수도 있는 새로워 보이는 재능은 아주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재능을 성령께 드려 그의 인도 아래 사용되게 한다면, 그것은 가르침의 값진 도구가 된다. 그 재능이 어떻게 생겨나는지에 대한 질문은 이것과는 무관하다. 유일하게 중요한 고려사항은 그 재능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다. 그 재능을 그 자체로 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식으로 그렇게 하든 상관없이, 발전을 늦출 것이다. 또한 그것의 가치는 과거에 성취한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과의 이례적인 교신, 혹은 하느님의 특별한 총애 등 무언가를 증명하는 것에 있지도 않다. 하느님은 특별히 총애하지 않으시며, 누구에게나 가능하지 않은 어떤 능력이라도 가진 자는 아무도 없다. 특별한 능력은 마법의 눈속임으로만 "입증된다."

4 진짜인 것은 그 무엇도 속임수에 사용되지 않는다. 성령은 속일 수 없으며, 오로지 진짜 재능만 사용할 수 있다. 마법을 위해 사용되는 것은 성령께 쓸모가 없고, 성령이 사용하는 것은 마법을 위해 사용될 수 없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유혹적일 수 있는 이례적인 재능에는 특유의 매력이 있다. 여기에 성령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강점이 있다. 하지만 에고는 이런 똑같은 강점에서 자신의 영광을 드높일 기회를 본다. 약함으로 바뀐 강점이야말로 정녕 비극이다. 하지만 성령께 드리지 않는 것은 약함에게 주어질 수밖에 없다. 사랑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두려움에게 주어지며, 그 결과 두려운 것이 되기 때문이다.

5 세상의 물질적인 것에는 더 이상 가치를 두지 않는 자들조차 "심령" 능력에는 여전히 속을 수 있다. 세상의 물질적인 선물에 대한 투자가 거둬들여지자, 에고는 심각하게 위협받았다. 에고는 여전히 교활한 책략을 써서 강함을 되찾기 위해, 이 새로운 유혹의 깃발 아래 다시 집결할 수 있을 만큼은 강할 수도 있다. 여기서 많은 이들이 에고의 방어수단을 간파하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특별하게 감지하기 힘든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속으려는 소망이 남아있으면, 속이기가 아주 쉬워진다. 이제 "능력"은 더 이상 진짜 재능이 아니며, 믿을 만하게 사용될 수 없다. 사람이 능력의 목적에 대해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그가 점점 더 많은 속임수로 그 능력의 불확실성을 강화할 것임은 거의 불가피하다.

6 누가 개발한 어떤 재능이든 거기에는 선을 위한 잠재력이 있다. 이것에 예외는 없다. 또한 그 능력이 더 이례적이고 더 예상치 못한 것일수록 그 잠재적인 유용성은 더 커진다. 구원은 모든 재능을 필요로 한다. 세상이 파괴하려는 것을, 성령은 회복하려 하기 때문이다. "심령" 능력은 마귀를 불러내려고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단지 에고의 강화를 의미할 뿐이다. 하지만 여기에 또한 성령께 봉사하는, 희망과 치유의 위대한 통로도 있다. "심령" 능력을 개발한 자들은 단지 자신의 마음에 부과한 몇 가지 한계들이 제거되도록 허용했을 뿐이다. 만약 그들이 더 늘어난 자유를 더 심한 감금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것은 단지 자신에게 가하는 더 큰 한계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성령은 이러한 선물을 필요로 하며, 그것을 오로지 성령께만 드리는 자는 가슴에 그리스도의 감사를 품고 간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리스도의 거룩한 비전이 찾아온다.

24. 환생은 참인가?26. 하느님께 직접 도달할 수 있는가?